암은 조용히 다가온다. 폐암도, 대장암도 그렇다. 몸 어딘가의 이상 신호를 바쁜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이들이 꽤 많다. 평소보다 기침이 오래가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증상, 배가 더부룩하거나 변이 자주 묽어지는 증상 등이다. 그러다 병원을 찾으면 이미 치료가 어려운 상태란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생긴다.
폐암은 흔히 ‘조용한 암’으로 불린다. 흡연자는 기침을 늘 있는 일로 여기는 경우가 적잖다.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한 느낌도 스트레스 탓으로 돌린다. 그렇지만 폐에선 작은 혹이 자라고 있을 수 있다. 혹이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기침과 혈담,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때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폐암 고위험군(흡연경력, 가족력 등)에는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권장한다. 방사선 노출은 최소화하면서도 작은 혹까지 찾아낼 수 있는 검사다. 하지만 CT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혈액 속 단백질 변화로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종양표지자 검사가 함께 활용된다. 대표적인 표지자가 CEA와 CYFRA 21-1, NSE다. 이 단백질은 폐에서 비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 증가한다. 폐암이 아니더라도 염증이나 다른 원인으로 수치가 오를 수 있지만 수치가 점진적으로 상승하거나 갑자기 크게 올라가면 몸 어딘가에서 비정상적 변화가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대장암도 폐암과 닮은 구석이 많다. 증상이 늦게 나타나고, 나타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쉽다는 점에서다. 변이 묽어졌다고 대장암을 의심하는 경우는 드물고, 배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대장암은 천천히, 아주 조용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조기 발견만 하면 치료 성적이 좋은 암이다.
조기 발견의 핵심은 내시경이다. 대장암은 암으로 발전하기 전 수년간 용종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적잖다. 정기적으로 내시경을 받으면 상당수 대장암을 예방하거나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 내시경에 대한 부담감이나 시간 부족으로 검사를 미룰 땐 보조적으로 혈액 검사를 활용한다.
대장암에서도 CEA는 유용하다. 비정상 세포가 자라면서 수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CA 19-9라는 또 다른 표지자를 함께 측정하면 진단 정확도가 높아진다. 특히 진행된 대장암에서는 두 수치가 동시에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종양표지자는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불씨의 열기를 감지하는 센서와 같다. 아직 불이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민감한 기계가 선제적으로 뜨거움을 감지하듯 혈액 속 단백질의 작은 변화가 미래의 위험을 예고한다. 예측의학은 바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읽어내는 과학이다.
폐암과 대장암 역시 진단이 아닌 예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엔 재생의학이라는 새로운 흐름도 합류 중이다. 줄기세포는 아직 특정 세포로 분화되지 않은 원시적 세포로,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는 데 쓰일 수 있다. 폐나 장은 항암 치료 후 손상이 심하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줄기세포는 염증을 줄이고 손상된 세포 회복을 도우며 조직 환경을 안정화한다.
줄기세포가 폐암이나 대장암을 직접 치료하는 방식은 아직 임상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항암 치료 후 회복 과정에서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는 점점 더 널리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폐 손상으로 인한 만성 호흡 곤란이나 장 점막 손상으로 인한 흡수 장애를 줄이는 방향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폐와 대장, 평소에 조용히 일하는 이 두 장기의 기능이 무너지면 생명에 큰 위협을 준다. 이 조용한 장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미리 대응하고, 치료뿐 아니라 예방과 회복까지 함께 설계하는 시대가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 번의 CT와 한 번의 내시경, 한 번의 혈액검사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건강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주 작고 조용한 신호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SOS에 응답할 차례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