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의 해양 이야기] 바다가 보내는 SOS ‘해상열파’… 극한폭염 원인으로 지목

입력 2025-09-02 00:13

해양 온난화 속도 두 배 빨라진 영향
해수온 급상승해 지속되는 극한 현상
북태평양고기압 확장 불러 최악 폭염
동해안 폭군 청상아리 혼획과도 관련

1991~2020년 평균 대비 2025년 8월 24일 세계 해수면 온도 이상치.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홈페이지

노인은 긴 사투 끝에 5m 넘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지만 상어들에게 뜯기고 뼈만 남긴 채 돌아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다.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쿠바 앞 아열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이제 그 무대를 우리 바다로 옮겨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도 청새치가 잡히고, 청상아리는 물론 백상아리까지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 중부에서까지 과거에는 드물었던 아열대성 어종의 출현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2000년대 후반부터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강원도 진부령 덕장에서 출하되는 황태의 원산지가 점차 러시아산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기와도 겹친다. 어류 생태계의 이러한 변화에는 공통된 배경이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양 수온 상승이다.

해양 수온 상승은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그 양상은 시공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유네스코 등 여러 국제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해양 온난화 속도는 2배로 빨라졌고, 수온 상승률과 열함량 증가의 지역 차이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향후 기후 현상과 재해 발생의 강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지역적 불균형의 사례로 ‘해양열파(Marine heat waves)’가 있다.

해양열파는 수온이 평균보다 크게 상승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극한 현상으로, ‘해양 폭염’ 또는 ‘해양 고수온’으로도 불린다. 이 현상은 수일에서 수개월, 심지어 수년까지 지속되기도 하며, 연안의 국지적인 영역부터 대양을 가로지르는 수천㎞ 규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최근 수십년간 해양열파의 빈도, 강도, 지속 기간, 범위가 모두 증가했으며, 주요 원인으로 인간 활동을 지목했다. 해양열파의 증가 추세는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23년 해양열파는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강도와 가장 넓은 범위(전 세계 해수면의 96%), 가장 긴 지속 기간을 기록했다. 논문은 이를 두고 “지구 기후 시스템의 전환점을 알리는 초기 신호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변화가 단순한 이상 현상이 아니라 훨씬 더 극단적인 기후 현상의 전조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4~2025년에도 강한 열파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에 힘을 더해준다.

해양열파는 대기와 해양의 조건에 따라 발생한다. 대기 조건을 보면 구름이 적고 바람이 약해질 때 해수면 온도가 상승한다. 구름이 줄어들면 태양열이 바다에 더 많이 흡수되고, 바람이 약하면 바닷물의 증발이 감소해 열이 바다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조건은 고기압이 정체할 때 주로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고기압 형성의 원인으로 ‘원격상관(teleconnection)’ 개념에 주목하는데, 이는 서로 먼 지역에서 나타나는 해양-대기 현상이 서로 연관된다는 의미다. 한 지역에서의 변화가 대기 상층을 따라 전파돼 다른 지역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열대의 심층대류나 엘니뇨 같은 적도 해역의 현상이 북서태평양에서 정체성 고기압을 형성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해양 자체의 조건도 열파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뜻한 물을 북쪽으로 수송하는 해류가 평균보다 더 북쪽으로 확장되면 해당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고, 연안 해역에 저염분수가 유입되면 해양 표층의 밀도가 낮아져 아래층과 혼합되기 어려워지면서 표층에 쌓인 태양열이 수온을 더 끌어올린다.

해양열파의 영향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산호가 백화된 모습.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홈페이지

이 같은 해양열파는 해양 생태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특히 움직일 수 없는 생물에 치명적이다. 산호 백화, 해조류 고사, 어류 이동 등 다양한 생태계 변화를 일으킨다. 2004년 호주 인근에서 발생한 해양열파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사상 최악의 산호 백화가 일어났고, 최대 규모의 산호 감소로 이어졌다. 2013~2016년 북동부태평양을 달군 해양열파는 연어의 이동과 산란 시기 변경, 바다사자의 이상 행동, 게 어장 폐쇄 등 어업 활동까지 타격을 줬다. 북동대서양에서는 청어의 산란능력 저하와 함께 10년 사이 개체수가 40% 이상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 해역도 예외는 아니다. 동해안에서 상어 혼획이 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022년 1건에서 2023년 15건, 2024년 44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7월 말까지 22건에 달했다. 대부분 열대성인 청상아리다. 매년 여름이면 양식장 어류 폐사와 긴급 방류, 그리고 우럭과 멍게 등 활어 가격 급등이 반복되며, 이는 이제 익숙한 뉴스가 됐다. 지난 7월 8일 경북 동해안에서는 참다랑어(참치) 1300여 마리가 잡혔으나 국제기구의 어획량 한도를 초과해 폐기됐고, 아열대성 푸른우산관해파리가 올해 처음으로 동해안에서도 대량 발견됐다. 이 모든 현상은 해양열파와 관련 있다.

해양열파의 영향은 바다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여름 극단적인 날씨의 원인으로 뜨거워진 바다를 지목한다. 장마가 일찍 끝나고 바로 극한 더위가 나타난 원인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의 한반도 남쪽까지 확장을 꼽았고, 배경에는 북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가 있다. 반복된 국지성 집중호우도 서해의 표층 온도가 높아져 바다에서 수증기 공급이 많았던 영향으로 분석된다.

동해안에서 청새치를 낚는 광경이 낯설지 않게 된 지금, 그것은 단지 흥미로운 바다낚시 소식만은 아니다.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다. 해양 생태계와 날씨, 우리의 식탁까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바다가 어떻게 변하는지보다 어떻게 대응할지를 말해야 할 때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