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리스 노멀라이제이션(Shameless Normaliz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직역하면 ‘뻔뻔한 정상화’쯤 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던 발언이나 행동이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고, 결국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루스 보닥 영국 랭커스터대 석좌교수가 저서 ‘공포의 정치(Politics of Fear)’에서 사용했다. 보닥은 극우 담론이 어떻게 일상의 언어로 스며들고, 사회·정치의 중심으로 침투하는지를 분석하며 몰염치한 반복을 핵심 기제로 들었다.
말로 하니 어렵지만, 우리 일상에선 매우 익숙하다. 유럽을 떠올려 보라. 과거에는 극단적이라 여겨졌던 인종차별이나 반이민의 정서가 수년간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대중정치의 한가운데로 진입했다.
‘윤 어게인’이 승리한 지난 8·26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한국에서 ‘셰임리스 노멀라이제이션’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법한 비상계엄으로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반성한 인물이 당대표가 됐다. 그는 탄핵에 동조한 동료 의원들의 행위를 내부 총질로 규정하고, 함께할 수 없다는 압박을 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의 패악을 알리기 위한 경고성 조처”라는 희한한 변명을 들어야 했다. 일부는 윤 어게인의 세력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무렵 ‘계몽령’이라는 구호도 거침없이 썼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대통령 관저에 모였던 국민의힘 의원은 44명이나 됐다. 이제는 체포를 피하려고 구치소에서 속옷 차림으로 버틴 전직 대통령 면회가 인간적 예의라는 말을 당대표가 한다. 지난 9개월 동안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반복되면서 부끄러운 감각이 옅어졌다. 이런 일이 문제라는 인식조차 흐릿해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아스팔트 극우의 담론을 제도권 정치로, 그것도 제1야당의 심장부로 불러들인 결과를 냈다. 극우적 언행이 어느덧 당내 주류로 침투하는 과정, 즉 몰염치의 반복을 통해 ‘정상’으로 여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단의 세력화는 국민의힘만의 현상도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리 편을 위한 정의가 아니면 불의로 간주하는 일들이 있어왔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사를 문제 삼고, 법이 불편하면 바꾸면 된다는 말이 공론장에서 버젓이 오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덕수 전 총리의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헌법상 근거도 없는 특별재판부 설치 주장도 공공연히 나온다. 윤석열정부에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우리 편) 사람들은 모두 정치사법의 피해자로 간주된다. 그렇다 보니 보수 일각에서는 “왼쪽도 이미 극단이 중심부를 장악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뭐냐”는 항변까지 나온다.
극단으로 치우친 정치는 충돌의 우려를 키운다. 이미 우리는 ‘적폐 세력’ ‘반국가 세력’ ‘내란 추종 세력’ 등 상대에 대한 적대적 규정에 익숙해져 있다. 반대편을 악마화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언어에 잠식당한 것이다. 합리적 비판은 배신자의 내부 총질로 치부돼 결국 입을 다무는 것이 미덕인 정치를 하고 있다. 한때 우리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면 얼굴이 붉어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요즘은 음지에 있어야 할 말들이 극렬 유튜버들의 스피커를 타고 광장으로 쏟아지고, 박수까지 받는다. 그런 생경한 장면들을 마주할 때마다 상식적인 감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묻게 된다. 염치를 차리는 게 용기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얼굴빛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