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친나왓 가문

입력 2025-09-01 00:40

태국은 선거 외의 방법으로도 정치 권력이 자주 무너지는 나라 중 하나다. 쿠데타나 헌법재판소의 총리 해임 결정이 잦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후 쿠데타가 12차례 성공했을 정도로 군부 영향력이 막강하다. 헌재의 힘도 못지 않다. 헌재는 1997년 설립 후 110개가 넘는 정당의 해산을 결정했고 17년 동안 5명의 총리를 해임했다. 최근은 사흘 전이었다.

태국 헌재가 8월 29일 패통탄 친나왓 총리의 해임을 결정한 이유는 분쟁국 실권자와의 통화에서 군을 폄하한 행위가 헌법 윤리 기준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패통탄 총리는 지난 5월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 당시 아버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밀접한 관계였던 훈 센 캄보디아 상원의장(전 총리)과 통화하며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자국 국경 사령관에 대해서는 ‘(정치적) 반대편 사람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문의 친분에 호소해 분쟁을 풀려는 시도였지만, 훈 센 의장은 녹음한 통화 내용을 공개해 버렸다. 총리가 국익을 저해했다는 비판적 여론이 일면서 직무가 정지됐던 패통탄은 결국 헌재에서 탄핵됐다. 지난해 8월 38세의 나이로 태국 최연소 총리가 된 지 1년 만이다.

그의 실각으로 총리를 4명째 배출했던 친나왓 가문의 입지도 흔들리게 됐다. 가문의 정치적 수장인 탁신은 2001~2006년 총리를 지냈고, 이후 패통탄의 고모부인 솜차이 웡사왓과 또 다른 고모인 잉락 친나왓도 총리를 역임했다. 개혁 성향의 친나왓 가문은 친왕실·친군부 성향 보수 세력에 맞서며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2023년 7월 총선 후엔 군부 세력과 손잡고 정부 구성에 나섰다. 덕분에 15년 넘게 망명 중이던 탁신 전 총리의 귀국과 감형·가석방이 이어졌고, 패통탄의 총리 취임이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패통탄의 해임으로 보수 세력과 친나왓 가문의 관계에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탁신 전 총리는 오는 9일 특혜성 수감과 관련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자칫 다시 복역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