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김정은의 전승절 노림수

입력 2025-09-01 00:31

동북아 안보 환경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을 공식 발표했고, 북한도 이를 확인했다. 북한은 중국의 편에 서는 북한을 보여줌으로써 소원해진 시진핑 국가주석의 마음을 돌려야 하며, 중국은 북한을 끌어안음으로써 전통적 영향력의 복원이 시급한 상황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안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힌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은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파급력이 있다.

중국과 북한 중 누가 먼저 손짓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에는 양국의 상호 필요성이 합치되는 점이 있다. 국제질서 차원에서는 미국이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 일방적으로 전개하는 트럼프식 ‘관세 폭주’에 대한 각국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좌충우돌하는 트럼프의 행보를 지켜본 중국 중심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상대적 자신감을 기반으로 반미 연대 구축에 대담함을 보이는 중이다. 중국이 이번 전승절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을 초청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시진핑시대 들어 ‘홈그라운드(主場) 외교’를 통해 자국의 대외 역량을 과시하고자 한다. 사실 중국은 2차대전 승전과는 직접적 연결고리가 적음에도, 일본의 패망을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일’로 규정해 중국 주도의 외교, 대미 저항 연대 구축에 적극 활용한다. 중국은 이번 80주년 전승절 참석 정상 명단에 푸틴을 첫 번째로, 김정은을 두 번째로 발표했다. 이는 한·미·일 공조가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흔들린다는 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이 주도하는 중·북·러 연대 구도의 가시화로 연결된다.

시진핑은 미국과 대항하는 푸틴·김정은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는 모습을 통해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분명한 저항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첨예한 상황에서 러시아와 동맹까지 복원한 북한의 움직임은 중·북 관계를 소원하게 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 유지에도 부정적인 이 상황은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면 중국은 국외자가 될 수 있다는 조급함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중국에 북한은 여전히 ‘전략적 완충지대’로, 대미 협상 카드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충분하므로 복원이 필요하다.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향후 입지에 관한 리스크 관리가 시급하다. 특히 미국과의 대화까지 염두에 둔다면 협상력 확보 차원에서 트럼프 1기 때의 북·미 대화처럼 중국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또 북한은 현시대를 ‘신냉전·다극화’로 규정하면서 ‘핵보유국’ 북한의 지위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은 최초 다자외교 무대 데뷔인 이번 행사를 통해 불법 핵개발국인 ‘불량국가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암묵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외교적 장소로 활용하고자 하는 부수적 효과도 노리고 있다.

물론 북한의 의도가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역시 한·미·일 공조를 아시아판 소 나토(NATO)로 강력히 비난하면서 중국 주도의 중·북·러 연대 구도 구축에는 부담이 크다. 설사 실질적 중·북·러 연대가 구축되더라도 세 나라가 대미 관계에서 동상이몽인 입장이어서 실질적 연대 행동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 행사가 ‘국제질서를 지키려는 것’이라는 중국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분열을 상징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미·중 갈등은 물론 엄습하는 신냉전의 그림자를 극복할 전략적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전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