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묵묵한 속도

입력 2025-09-01 00:32

아프리카 희귀 식물을 키우고 있다. 파키포디움 그락실리우스라는 괴근식물이고, 화분과 식물 모두 합쳐 주먹만 한 작은 크기다. 두 번째 산문집을 출간했을 때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식물은 아주 느리게 자란다. 별명이 ‘코끼리 발’이라는 이 식물의 생김새가 바위 같기도 해서 느린 성장 속도가 잘 어울려 보였다. 물을 자주 줄 필요 없고, 돌보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식물을 선물하면서도 혹여나 내게 챙겨야 하는 대상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아닐까, 친구는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화분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 마음과 건네는 손을 오래 생각했다.

‘아프리카 식물이니까 햇빛이 중요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집에서 해가 가장 쨍쨍한 자리에 두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몇 없는 잎이 마르면서 한두 개씩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놀란 마음에 찾아보니 직광이 아니라 반양지에서 키워야 했다. 아프리카 식물이라고 모두 다 햇빛을 직접 맞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식물을 대할 때도 나의 편견이 작동했던 것이다. 조금만 주의를 덜 기울이면 안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게 된다. 서둘러 반양지에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고, 물은 비 오는 날에 잠시 비에 젖게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비에 영양분이 많다고 하니까.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여름 한가운데를 지났다.

그락실리우스에겐 ‘파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여섯 살 아이가 생김새를 보면서 문득 떠올린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파키는 건강하게 자라는 중이다. 키나 몸집이 자란 것은 아니지만, 잎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록이 선명하고, 연둣빛의 새잎도 아기 이처럼 두세 개 났다. 크기가 훌쩍 커지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 속도로 자라는 파키를 보면서 모두에겐 저마다의 속도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에게도 겉으로 티가 나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안을 키우는 시간이 있음을 믿게 된다. 연한 잎을 틔우고 있을 시간을.

안미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