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 은행·이통사 책임

입력 2025-08-28 18:55 수정 2025-08-28 23:57

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시 은행 등 금융회사에도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휴대전화 불법 개통이 다수 발생하는 이동통신사는 영업 정지나 등록 취소가 가능해진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10분 내 긴급 차단된다.

정부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범정부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 있는 금융회사가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을 법제화해 도입하기로 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등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정부는 영국과 싱가포르 등 금융회사에 무과실 배상책임 의무를 부과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개선 방안을 구체화한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민도 조심해야 하지만 금융회사도 상당 부분 책임을 져서 분담해야 한다”며 “고객의 피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배상 요건과 한도, 절차 등 구체적인 내용을 금융권과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사에 보이스피싱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전담부서 설치와 전문성 있는 인력 배치를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이통사(알뜰폰 포함) 책임도 강화된다. 이통사 관리의무 소홀로 휴대전화 불법 개통이 다수 발견되면 정부는 해당 이통사에 대한 등록 취소나 영업 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계획이다. 불법 개통을 묵인한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대해서는 이통사가 의무적으로 위탁계약을 해지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또 외국인 명의를 활용한 대포폰 개통 및 유통을 막기 위해 여권으로는 1회선만 개통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한 기관별 역량을 모으기 위해 다음 달부터 경찰청을 중심으로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을 운영한다. 기존 경찰청 통합신고대응센터의 43명 상주 인력을 137명으로 대폭 늘려 연중무휴 24시간 체계로 운영된다. 상담과 분석, 차단, 수사까지 연계하는 실시간 대응체계를 마련해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10분 안에 긴급 차단한다. 또 휴대전화에 보이스피싱 악성 앱 설치를 차단하는 체계도 구축된다.

금융권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경우에 따라 금융사가 엄청난 규모의 손실을 떠안을 수 있어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예방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피해액을 금융회사에 배상하게 하면 범죄 책임을 특정 산업에 전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광수 이의재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