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호텔보다 더 큰 만족감 주는 책방

입력 2025-08-30 00:34

오랜만에 한강진역 부근에 갔다. 젊은 인파 속에서 낯선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예약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이곳은 2만원을 내면 2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유료서점 ‘블루도어북스’다. 마치 호텔 프런트에서 절차를 밟듯 안내를 받고 옷을 걸었다. 먼저 온 이들은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었다. 자리야 잡았지만 여기는 호텔이 아니라 서점 아닌가. 일어나 기웃기웃 책방 구경에 나섰다.

50호, 아니 60호 정도 되려나. 벽에 걸린 커다란 추상화 앞에 헤드폰과 의자 그리고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큐알(QR)코드를 따라가니 그림을 그린 작가가 작업하며 듣던 음악이 나온다. 가만히 집중해 음악만 들은 게 얼마 만인가. 반복해 플레이하며 그림을 본다. 그림과 음악에 실려 하염없이 의식이 흘러갔다. 그림 옆 액자에 이런 글이 들어 있었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새의 선물, 은희경)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인데 그림 앞에서 30분을 앉아 있었다. 서둘러 책방 구경. ‘블루도어북스’가 하고 싶은 말은 QR코드에 담겨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미술도구를 둔 탁자 아래 바닥에 서 있는 조명, 그 아래 놓인 헤르만 헤세의 책, 그리고 이 구절.

“나의 그림이 없었다면 나의 글도 없었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블루도어북스’에서 만난 음악 그리고 짧은 문장이 필자를 조금씩 고양시켰다.

다시 책방 구경. 이번에는 작은 이동형 서가. 책방 주인이 읽은 책이 꽂혀 있다. 책을 보면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구마 겐고,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같은 건축가의 책이 보인다. 가끔 동네책방에 와서 책방지기가 읽고 밑줄 치고 메모한 책을 굳이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타인의 책을 구경한다는 건 누군가를 몰래 만나는 일이다. 김진우 대표의 서가를 훑어보고 내린 결론은 섬세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짐작. 따라 읽을 요량으로 몇 권의 책을 메모했다.

아뿔싸, 마지막 10분을 알리는 안내가 나왔다. 아직 책방 구경을 다 끝내지도 못했다. 제법 넓은 책방에 아무렇게나 책이 쌓여 있는 듯 보여도 나름의 구획이 있다. 해리 포터 마니아를 위한 존, 우주와 물리 존, 아트북 코너도 있다.

이곳들은 다음으로 기약하는 수밖에. 대신 마음대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안내를 받고 찰칵찰칵 서점을 찍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며 들었던 노래의 제목을 물었다. 아이슬란드의 록 밴드 시규어 로스의 올라잇.

책방이자 호텔로 생각해 달라는 김 대표의 말처럼 공간 경험의 질은 훌륭했다. 아직 더운 이 여름, 호캉스 대신 ‘블루도어북스’를 추천한다. 북캉스 떠날 만하다. 육체를 지닌 인간은 온라인만으로 살 수 없다. 실체가 있는 진짜 공간, 내 손으로 만지고 소유할 물성이 필요하다.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방으로 가는 일은, 그러므로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