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연간 근로시간 최상위권, 노동생산성 최하위권. 이 치열한 역설 속에 우리는 여전히 견디는 법만 배우고 있다. 휴식하면 결국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사회에 만연하며 경쟁사회는 개인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한다. 사람들은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계속 커피를 마시며 일하고, 졸음이 깨는 각성 음료를 마시면서 공부한다. 자각하기도 전에 몰래 쌓인 피로가 엄습해 몸이 고장나기도 한다.
항공교통관제사도 피로를 피해갈 수 없다. 밤 근무와 아침 근무를 연이어 하며 밤을 새우는 건 관제탑에서 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늘과 공항을 지키는 항공교통관제사의 야간 근무가 15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긴 밤에 주어지는 몇 시간의 휴식 동안 쪽잠을 자고,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에 맞춰 일어날 때는 심장도 알람 시계처럼 정신없이 요동치며 새벽을 맞는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피로 관리를 위해 관제사의 최대 연속 근무시간에 제한을 둔다. 미국의 관제사는 24시간 이내의 근무시간 중 연속으로 10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할 수 없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을 따르는 유럽연합(EU)도 비슷한 피로 관리 제도를 공유한다. 유럽항공안전청(EASA)에 따르면 유럽 관제사의 평균 최대 연속 근무시간은 9.2시간으로, 우리나라의 평균 야간 근무시간인 15시간보다 짧다.
긴 야간 근무도 고된 일이지만 더 힘든 건 야간 근무 후 이어지는 또 다른 야간 근무다. 야간 대체근무를 서면 저녁부터 아침까지 15시간 근무 후 같은 날 저녁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 스케줄은 주간, 야간+조간, 야간+조간 후 다시 주간으로 이어진다.
FAA와 EASA 등 국제기관은 이러한 스케줄을 고위험 교대패턴으로 규정해 연속되는 근무를 금지하거나 최소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관련 규정이 도입돼 있지만 ‘해당 기관의 근무조건 등을 고려해 근무 편성을 적절히 변경해 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실제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해진 최소 근무인원 조건에 맞춰 동료의 공백을 대신하다 보면 매일 관제탑에 있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하는 말도 어느새 진실이 되곤 한다.
누군가는 한국의 관제 범위인 인천 비행정보구역(FIR)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근무가 편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좁은 공역 안에 복잡한 항로와 군 공역까지 더해져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고난도 관제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일일 항공 교통량은 적을지라도, 관제의 난도와 위험성이 세계에서 손꼽는 수준으로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어려운 근무조건 속에서도 동료 관제사들은 관제 업무에 헌신해 왔다. 하지만 최근 숙련 관제사의 해외 취업이 증가하고, 각종 휴직으로 공백이 생기며 현장에서 근무조를 꾸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존 관제사가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입 관제사를 또다시 키워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보면 경력 관제사의 이탈은 시리도록 뼈아프다.
언젠가 관제사를 지망하는 학생에게 관제사로 근무하다가 해외에 취업하는 사례가 있는지 묻는 메일도 받은 적이 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관제사를 지망하는 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마저도 해외 관제사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장에서는 누군가의 하루와 미래를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다. 그 무거운 짐이 더는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지 않도록 구조적인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관제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로를 가벼이 여기는 성과 중심 문화는 사람을 시스템의 부품으로 소모한다.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시스템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사고가 나면 대책을 모색하지만 예방에는 늘 소홀하다. 마치 도둑이 든 뒤에야 자물쇠를 사러 나서는 모습처럼 말이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는 ‘잘 버티는 개인’에게 의존하는 구조다. 모두가 각자의 일터에서 하루를 인내하는 식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옳지 않다. 버티는 개인 위로 쌓아 올린 안전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견디는 법을 가르친 세상이, 이제는 쉬는 법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