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박6일의 숨 가쁜 방미·방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국민 모두 긴장 속에 지켜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번째 정상회담은 대통령실 표현에 따르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향했던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지켜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목은 두 나라 정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백악관에 도착한 이 대통령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회담장에 들어서자마자 작심한 듯 트럼프에 대한 찬사를 쉬지 않고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를 향해 “세계 지도자 중에 평화 문제에 대해 대통령님처럼 이렇게 실제 성과를 낸 경우는 처음”이라며 “이 문제(한반도 비핵화)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철저히 커튼 뒤로 숨고, 트럼프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국 국교정상화 이후 양자 방문지로 일본을 먼저 택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이 유일하다는 점과 양국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중요한 동반자라는 점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앞에서 몇 차례나 강조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파워맨’들의 브로맨스도 위력이 대단했다.
트럼프 특유의 즉흥성 때문에 혹여나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처럼 수모를 겪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참모들의 걱정이 무색했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전사다”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다”라고 극찬을 받았다. 트럼프가 내밀 것이라고 예견됐던 ‘동맹 청구서’는 부과가 유예됐고, 재계를 떨게 했던 추가 관세의 공포에서도 일단은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시바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협상을 진행하며 겪었던 ‘노하우’를 이 대통령에게 자세히 설명해줬다고 한다. 양국이 17년 만에 채택한 공동언론발표문에는 이 대통령에게 절실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을 비롯해 양국이 서로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워싱턴DC 현지 브리핑에서 “감히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브로맨스 후에 올 것’들이다. 당장 미국이 내놓을 계산서가 만만치 않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경제·통상의 안정화’ ‘동맹의 현대화’ 부문에서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뉴노멀은 끝없는 협상의 연속이라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담 직후 말했다.
당장 트럼프는 이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의) 군사기지 부지의 임대차 계약을 없애고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매우 창의적인 요구를 했다. 그가 어떤 말로 정부를 당혹스럽게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협력은 협력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었던 일본의 권력자들이 어느 순간 과거사를 다시 부정하고, 영토 문제로 우리를 곤란하게 할지 알 수 없다.
이 대통령의 노력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 돈독한 유대를 형성했지만, 통상·안보 분야 협상에서 이렇다 할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찐한 우정’을 나눴기에 그 뒤에 찾아올 ‘숙제’는 오히려 해결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대통령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