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지노박 (5) 이민자로서 좌절과 공포… 폭력과 범죄 속에 빠진 삶

입력 2025-08-29 03:05
1979년 지노박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해 정착한 시카고는 치안이 불안정해 총기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던 지역이었다. 사진은 1982년 시카고 거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1979년 우리 가족은 큰 결단을 내렸다. 사역의 무게와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아버지는 끝내 구세군 사역을 내려놓고 미국 장로교단 목회자로 등록하기로 하셨다. 원칙을 지키는 데 철저했던 아버지에게 이민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족을 책임지고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착지는 시카고 인근 로렌스빌. 당시 이 지역은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했다. 일주일에 두세 명씩 한인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는 흑인과 멕시칸 이주민이 모여 사는 허름한 아파트에 살았다. 총기 소지가 합법인 지역이었기에 총격 사건은 일상이었다. 매일 아침 누군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이 당연해져 버렸다.

그 무렵 기억 중 가장 강렬한 장면이 있다. 큰형과 함께 자고 있는데 거실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순간 강도라 직감했다. 강도에게 들키면 목숨을 잃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도 위험했다. 큰형과 나는 “셋을 세고 뛰어들자”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그 그림자의 주인은 강도가 아니라 새벽마다 거실을 오가며 기도하시던 아버지였다. 안도의 눈물이 터졌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도가 우리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였음을 깊이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이민 초기의 삶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다. 비교적 여유 있는 군인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낯선 현실 앞에서 큰 좌절을 겪으셨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은 어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 역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무렵 월남과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들어온 그들은 두려움이 없고 거칠었다. 총과 흉기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던 그들과 지내면서 나도 점점 위험한 삶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불법 총기와 화염병을 내게 쥐여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두며 언젠가 나를 지켜줄 무기라 믿었다.

실제로 총격 사건은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다. 태권도 사범, 편의점 주인, 주유소 직원 등 어제 인사를 나눴던 이들이 오늘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죽음은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이었다. 나는 더욱 과격해졌다. 누군가 눈만 마주쳐도 시비를 걸었고 언제나 무기를 들고 다니며 ‘내가 먼저 제압해야 산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그 시절의 나는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힌 불안한 청년이었다. 무시당하면 같이 죽자는 식으로 덤볐고 눈빛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며 폭력과 범죄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한 방황이 아니었다. 이민자로서의 좌절, 언어와 문화의 장벽, 그리고 생존의 공포가 뒤엉켜 빚어낸 아픈 초상이었다. 미국 이민 생활은 이렇게 두려움과 고통을 주며 내 인생의 또 다른 역경이 되어갔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