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80주기를 맞는 해이다. 그의 선한 얼굴, 순결한 나라 사랑과 저항 정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몇몇 빼어난 서정시는 우리 민족의 가슴에 지금도 불멸로 존재한다. 그런 윤동주의 삶과 시에 가장 깊은 수원(水源)이 되어준 것은 북간도 기독교였다. 복음주의 전통이 강한 서북 기독교와는 달리 북간도 기독교는 민족주의를 가장 강하게 받아들였다. 북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동주에게 이곳 기독교 전통과 기운은 민족의 수난과 영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영적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가게끔 해주었을 것이다. 그 정신은 그곳 사람들이 해방 후 한국사회에 남긴 자취를 통해서도 넉넉히 짐작해볼 수 있다. 윤동주 송몽규 문재린 문익환 문동환 송창근 김재준 안병무 강원룡 정대위 나운규 등 많은 이들이 북간도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를 통해 정신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북간도 기독교의 저력을 깊이 새겼다. 이는 윤동주를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원천적 힘이었을 것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직전인 1941년 초겨울에 자신의 시편들 중 열여덟 편을 뽑아 유일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묶었다. 거기 실린 ‘태초의 아침’에는 신의 창조 사역이 완전무결한 질서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모순으로 둘러싸인 세계였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사랑과 뱀, 독(毒)과 꽃이 갈등적으로 공존하는 세계 말이다. 이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를 동반하면서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되어갈 세계를 예견하게끔 해준다. ‘또 태초의 아침’ 역시 창조 과정에서 계시와 낙원 상실이 함께 왔음을 증언하는 작품이다.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는 마지막 행은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함의하기도 하지만 폭력과 갈등의 시대에 숨지 않겠다는 희생적 이미지도 보여준다. ‘새벽이 올 때까지’는 창조와 희생의 이미지를 종말론적으로 반추하는 작품이다. 이 모든 것이 태평양전쟁으로 제국주의가 한참 확장해가던 시대를 묵시적으로 예감한 결과일 것이다.
‘십자가’는 윤동주 종교시의 대표작으로서 희생과 속죄양 의식을 동시에 나타낸다. 시인은 첨탑 위의 십자가가 비록 구원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그것이 다다르기 힘든 대상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우리에게 건넨다. 그것은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워했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높고 날카로운 천상의 십자가가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받아들인 지상의 십자가로 바뀐 것이다. 이때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이어지면서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이 겪어갈 수난과 희생의 장면을 감동적으로 암시한다.
‘바람이 불어’는 그러한 종교적 갈등을 벗고 십자가를 내면화한 채 나아가는 출사표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에서 반석과 언덕은 가혹한 수난과 굳건한 기초라는 뜻을 품으면서 윤동주가 앞으로 시대와 신앙을 결속하면서 움직여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해준다.
윤동주는 생애 내내 학생이었고 학교도 여럿 다녔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숭실중학교 연희전문학교와 일본의 릿쿄대, 도시샤대 모두 개신교 계열의 미션스쿨이었다. 윤동주가 근대적 의미의 종교개혁이나 이스라엘 수난사로서의 성경 내러티브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였고 또 그것을 자신의 의식에 얼마나 장착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윤동주에게 기독교는 자신을 성찰하고 완성해가는 중요한 사상적 원천이자 실천의 통로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슬픔과 연민, 죽음과 부활의 서사는 어떤 의미로든 그에게 ‘나한테 주어진 길’(서시)을 상상하게끔 하고, 성경 안에 펼쳐진 묵시록이나 종말론은 가혹한 현실을 그로 하여금 견디게 해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 시인 윤동주는 한국 기독교 문학사에서 지금도 가장 우뚝한 시인으로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