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 문래동’ 탄생… 그 이면의 비밀은

입력 2025-08-29 00:18
서울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세워진 깡통 로봇이 쇠로 된 꽃을 들고 있다. 도시사회학자 김신혁은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도시의 구조와 원리를 탐구한다. 철공소 거리에서 예술가와 젊은이가 모이는 명소로 변화한 문래동은 앤서니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국민일보DB

우리는 거의 모두 도시인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의 2023년 기준 ‘도시계획현황’ 통계를 보면 한국의 도시 면적은 전 국토의 16.5%를 차지하는데 도시의 인구 비율은 92.1%에 이른다. 길거리 아무에게나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보더라도 10명 중 9명은 도시라고 답한다는 얘기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 공간이다. 도시사회학자 김신혁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도시의 일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회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낯선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구조와 원리를 보여준다. 그 이면을 꿰뚫어 보기 위해 선배 사회학자 33명의 힘을 빌린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며 경기도 고양의 고양연구원으로 출근하는 저자는 자주 ‘김씨’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김씨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책에 몰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우선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호출한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교차하는, 개인의 일상과 세상의 역사 간의 관계를 통찰하는 관점’이다. 저자는 “개인의 사소한 문제를 사회라는 렌즈를 통해 더 넓은 공공의 문제로 확대해서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론 격이다.


우리의 일상 공간을 보자. 우리는 출근이든 등교든 매일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집에서 나와 저녁이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우리 일상의 중심이자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집은 왜 편안할까. 이유는 어빙 고프먼의 ‘연극학적 사회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알 수 있다. 고프먼은 사회생활을 연극에 비유했다.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배우처럼 때와 장소에 맞게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무대 전면과 뒷면은 다르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는 타인을 의식하고 인상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무대 뒤는 사적이고 편안한 곳이다. 집이 편안한 이유는 도시라는 무대 뒤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스태프나 동료 배우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관객이 아닌 조력자다. 저자는 “도시의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과 팽팽하고 긴장된 사회적 상황을 마주하는 우리에게 집은 내가 ‘나’일 수 있는 도시의 유일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도시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이지만 신기할 정도로 일상의 질서가 유지된다. 김씨는 매일 광역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버스 정류장에 줄 선 사람들은 서로 모르지만 절대 새치기를 하지 않는다. 은연중에 서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보통 ‘국룰’(국민의 룰이라는 의미로 국민 대다수가 당연하게 여기는 규칙)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일상의 국룰이 유지되는 원리를 해럴드 가핑클의 ‘에스노메돌로지(Ethnomethodology·민속방법론)’를 통해 설명한다. 가핑클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은 상대방과 신호를 주고받고, 그 신호를 알맞게 해석해 반응하는 메커니즘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관찰 가능한 정보로 최적의 반응을 도출해 내는 합리적인 과정의 결과인 셈”이라며 “이런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통해 자살률 1위 국가인 한국의 실태를 조명하고, 로버트 머튼의 ‘범죄 사회학’ 이론을 통해 ‘빌라왕’의 전세사기극을 분석하기도 한다.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 이론을 통해 현대 도시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지적하고,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 개념으로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인간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도시 생활을 설명한다. 책에는 언급된 사회학자 33명의 비교적 상세한 이력이 장마다 붙어있다. 형식적이지 않고 저자 나름으로 방대한 이론을 소화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도시는 늘 변한다. 생물과도 같다. 철공소가 밀집했던 서울 문래동이 예술가와 젊은이들의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변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여기에 앤서니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책의 핵심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기든스는 구조(structure)와 행위(agency)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한다. 구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재생산되는 사회적 규칙과 자원’이고, 행위는 ‘개인이 하는 모든 행동과 선택’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구조는 개인의 행위를 포함하고, 모든 개인의 행위 역시 사회구조를 포함한다. 저자는 “구조는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구조를 재생산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문래동의 변신을 구조화 이론을 통해 설명하면 이렇다. 1990년대 말 중국산 부품에 밀려 문래동은 침체하고 있었다. 다시 문래동이 활기를 띤 것은 젊은 예술가들의 유입이었다. 그들이 넓으면서도 저렴한 임대료를 빌릴 수 있는 곳으로 몰려들면서 문래동은 오래된 철공소와 예술인의 공방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저자는 “우리의 삶은 상당 부분 주어진 도시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우리 역시 행위를 통해 도시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면서 “변화된 도시 구조는 또다시 우리가 그 공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활동할 틀을 제시하며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큰 기대 없이 책을 들었다가 빠져들었다
·이야기꾼 김씨의 뛰어난 글솜씨도 매력적이다
·사회학이란 학문을 맛볼 수 있는 입문서로 손색이 없을 듯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