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전환의 파도가 ‘약자’의 일자리를 삼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은행 콜센터 직원들만 해도 최근 몇 년간 대폭 감축되는 상황이다. AI가 사람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해가는 상황에서 AI가 더 높은 능률을 발휘하는 직종부터 근로자들의 설 자리가 사라져갈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27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5대 시중은행(하나·우리·신한·NH농협·KB국민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객서비스상담(CS) 업무에 AI가 도입된 이래 콜센터 인원이 가파르게 줄고 있다.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대 은행에서 1만1955명의 콜센터 직원이 짐을 쌌다. 우리은행이 3181명으로 퇴직자가 가장 많았고, 가장 적은 하나은행도 1904명에 달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자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 부분이 신규 채용자로 대체됐다”고 해명했다.
이런 흐름은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직원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신한은행의 경우 콜센터 정규직은 53명으로 변동 없었지만 외주(하청)업체 직원은 14명 줄었다. NH농협은행도 정규직이 31명에서 38명으로 느는 사이 도급 인원은 되레 20명 감축됐다.
이 같은 감원의 배경에는 AI 도입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 상담원은 AI에 대체되기 쉬운 직종으로 꼽힌다. 실제 KB국민은행은 고객이 은행에 전화하는 수신 상담의 41.3%를 AI로 처리했다. 정보전달 등 비교적 단순한 발신 상담은 AI 처리율이 98%(신한은행)에 달하는 곳도 있다. 과거 ‘깡통 챗봇’ 수준이 아닌 자연어처리(NLP)·거대언어모델(LLM)·감정분석 같은 기술로 무장한 프로그램의 영향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콜센터 업무는 대부분 특정 루틴에 따라 응답하는 시스템”이라며 “생성형 AI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초 AI가 상담직렬 감원을 이끌고 있다는 간접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의 일자리 침공 조짐은 공공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국민일보가 전국 광역자치단체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서울시의 경우 120다산콜센터에 스피치 투 텍스트(STT·2023년), 채팅&상담도우미(2024년) 등의 AI 기능을 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 상반기 AI가 대체한 민원상담 건수(실시간 채팅상담 기준)는 313만6828건 중 5만1637건이었다. 전체의 약 1.6%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0.2%에서 비율이 8배 급증했다. 해당 기간 담당인력은 총 424명에서 414명으로 감소했다. 신규 채용 인원은 2020년 29명에서 지난해 21명까지 줄었고, 올해는 아직 2명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AI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현장 노동자”라며 “국회와 정부는 ‘AI 고용쇼크’를 방치하지 말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