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철거된 탑골공원 가보니… “일상 망가져” “싸움 없어 다행”

입력 2025-08-28 02:04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바둑, 장기 등 오락행위, 흡연, 음주가무, 상거래 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문 앞. 담벼락을 따라 놓여 있던 장기판 20여개 대신 노인 치매 예방법이 적힌 안내판 10개가 세워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장기·바둑을 두는 광경이 펼쳐졌던 공간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이달 초 노인들의 여가 공간이자 놀이터였던 탑골공원 북문 앞 장기·바둑판이 철거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국민일보가 노인들을 만나보니 하루의 일상을 함께하던 장기판과 커뮤니티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지만, 음주나 내기로 인한 갈등이 잦았던 탓에 오히려 잘된 조치라는 의견도 있었다.

57년째 탑골공원을 찾는다는 송모(75)씨는 “일주일에 3번은 꼭 공원에 와서 바둑을 두곤 했는데 철거돼 아쉬움이 크다”며 “공원에서 산책하고 바둑 두고 무료 점심을 먹고 귀가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망가졌다”고 푸념했다.

반면 탑골공원이 그동안 음주와 고성방가로 주민들의 112 신고가 끊이지 않았던 탓에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입장도 있다. 김모(74)씨는 “탑골공원을 오래 다녔지만, 음주로 인한 갈등이 빈번해 불쾌한 적이 많았다”며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다녀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이라는 거점을 잃은 노인들은 공원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고 있다. 이날 방문한 복지센터엔 30~40명의 노인들이 바둑알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이면 복지센터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오전엔 바둑을 두고 점심에는 4500원을 내고 식권을 사면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탑골공원이 국가유산이기에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관리가 필요했다”며 “공원 인근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마련돼 있어 어르신들이 더 나은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은 1991년 사적으로 지정돼 공원 담장 안팎 전체가 국가유산 보호구역이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