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막대한 대미 투자로 우려되는 국내 투자 공백 유념해야

입력 2025-08-28 01:20
대한항공 제공

다소 우려됐던 한·미 정상회담이 잘 끝난 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띄워준 이재명 대통령의 립서비스 못지 않게 풍성한 선물보따리 영향이 컸음을 부인키 어렵다. 정상회담에서 우리 기업들은 1500억 달러의 대미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 달 전 관세협상에서 제시된 3500억 달러까지 포함하면 현 정부가 약속한 총 투자액은 5000억 달러(약 700조원)다. 올해 국가예산(677조원)보다도 많고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일본과 유럽연합(EU)도 각각 5500억, 6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GDP 대비 비중으로는 일본이 13.1%, EU는 6.9%에 그친다. 그만큼 경제력을 고려한 한국의 투자액은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물론 미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데다 밀접한 공급망 연계, 첨단기술 시너지를 고려하면 대미 투자가 우리 경제에 온기로 작용할 소지도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의 허약한 경제 체력이다. 정부는 13조원의 소비쿠폰 등 올해 35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고도 성장률(0.9%)이 1%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내수 및 제조업 침체로 설비투자(2.0% 예상), 건설투자(-8.2%)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경제 동력도 희미한 상태다. 이 와중에 막대한 자금이 미국 내 산업 현장으로 흘러가면 국내 투자 여력이 더욱 줄어 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번 회담으로 통상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것은 다행이나 정부에겐 국내 산업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 해야 할 과제가 남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내년에 35조원의 역대 최대 연구개발(R&D) 예산을 책정키로 한 건 적절하다. 다만 경제 여건상 대규모 국내외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적극적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제도 정비만 잘 해도 투자 못잖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기업의 발목을 잡을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도입이 기업들로 하여금 대외 투자로만 내몰게 한다는 업계의 지적을 유념하기 바란다. 국내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중소기업의 협업, 해외 진출 기업들의 복귀를 도와 국내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는 리쇼어링 정책 확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