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안전 비용을 분담하는 사회

입력 2025-08-28 00:38

살다 보면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를테면 공사 현장의 사망사고 같은 것 말이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나는 비극은 인류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비극의 양상은 크고 작게 다르고, 피해자는 매번 새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사고 소식은 언제나 충격적이다. 익숙해진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그라진 목숨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또 있다. ‘제로 리스크’를 장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다. 사고 발생률을 ‘0%’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미지의 순간, 불상의 장소에서 벌어지게 될 사고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패배주의에 의탁해 살 수는 없다. 인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면서 살아왔다. 리스크의 최소화를 지향하면서 말이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진전시켜 왔다. 그런 시스템 안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인재’라고 부른다. 엄중한 책임감을 사람에게 부여한다. 시스템의 정점에 사람이 있는 셈이다.

최근 건설 현장 사망사고가 이어지면서 건설업계는 고도로 긴장 상태다. 대기업 건설사 임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안전 상황을 점검한다. DL건설은 대표이사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포함해 임원진은 물론이고 현장소장과 팀장급까지 사표를 냈다.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지금 어느 때보다 긴장도가 높아진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영향이 크다. 이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산업재해 발생한 기업에 불이익” 같은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놨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그 어느 때보다 높였다. 일종의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장마다 안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안전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허술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장비를 갖추고, 점검하는 인력이 배치돼 있다. 위험 상황을 빠르게 포착하고 대응하기 위해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본사 본부에서까지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곳도 적잖다. 노동자의 옷에 ‘보디캠’을 부착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한다. 음주측정을 하거나 업무 시작 전 건강체크를 해 불상사에 대비하려고 한다. 그래도 사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여러 통계를 보면 건설 현장 사고의 경우 공사비 5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입찰에서 ‘최저가’와 ‘짧은 공사 기간’을 써낸 중소형 건설사는 돈에 쪼들리고 시간에 쫓기게 마련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려고 하니 무리를 하게 된다. 안전 시스템이 부실해진다. 불운의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재는 이렇게 빚어진다.

안전 시스템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력 그리고 시간. 이 모든 게 비용으로 환산된다. 안전비용을 충분히 포함시키면 공사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안전한 현장을 만들려면 공사 기간은 길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파트 입주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지고, 건물주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어지고, 정부가 세금을 더 써야 한다. 건설사에 모든 책임을 지워봐야 반복되는 사고로 귀결될 뿐이다. 모두의 안전을 지향한다면 비용을 함께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안전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사회인가. 도무지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할 듯한 질문이다.

문수정 산업2부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