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루비오 이중 공세에 협상 막히자… 강훈식 날아가 수지 와일스와 직접 조율

입력 2025-08-28 00:02

강훈식(왼쪽 사진)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미국으로 급거 출국한 것은 대미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미 당국자들의 과도한 요구를 통합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통상·안보 영역의 미국 카운터파트가 각각 무리한 요구들을 쏟아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수지 와일스(오른쪽 사진) 백악관 비서실장과 직접 소통하며 정무적 조율에 나섰다는 것이다.

27일 정부와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상 영역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안보 영역에서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산발적으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쏟아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각 영역에서 수세에 몰렸던 상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장관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러트닉은 러트닉대로, 루비오는 루비오대로 수많은 요구를 제시해 협상 조율이 힘들었다”며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만 협소하게 국한된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강 실장은 통상·안보 전반의 큰 그림을 보며 미국과 정무적 논의를 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와일스 실장과의 핫라인 구축이 모색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논의가 진척되고 와일스 실장과의 면담 일정이 잡히자 강 실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강 실장의 계획은 정상회담 성공의 핵심 ‘키’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3시간여를 앞두고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문제의 글을 올렸다. 강 실장이 미리 구축한 와일스 실장 창구가 없었다면 바로잡기 어려운 돌발 상황이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그 이야기가 언급됐다면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가 한 방에 무너질 수 있었는데, 비서실장 간 소통 창구 덕에 대처할 수 있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권은 극우 세력의 ‘글로벌 연대’가 국가 정상 간 외교 무대에까지 영향을 미친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정상회담이 깨지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국내 극우 세력이 있었던 것”이라며 “그들이 미국 우파에 손을 뻗고,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글을 쓰게까지 했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의심했다. 정부 당국자는 다만 “강 실장이 극우 세력의 동향을 사전에 입수해 방미한 것은 아니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