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당초 우려와 달리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면서 이제 한반도 주변국들의 시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옮겨가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통상이나 안보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불협화음 없이 후속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돌출 행동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회담 장면을 연출하고, 첫 만남에서부터 관계를 돈독히 한 것만으로도 이 대통령으로선 외교적 지렛대가 생긴 셈이다. 이제 한·미 회담으로 생겨난 외교 동력에 더 속도를 붙여 APEC 성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 남았다.
이번 APEC은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개최하는 행사다. 21개 회원국이 세계 인구의 37%, 국내총생산(GDP)의 61.4%를 차지한다. 각국 정상과 수행원·경제인 등 2만명이 몰리는 행사인 만큼 한국의 외교·경제·문화적 역량을 과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행사 주제가 ‘지속가능한 내일-연결·혁신·번영’인데, 초연결사회 확산과 인공지능(AI)을 통한 혁신, 교역 확대를 통한 번영을 꾀하는 한국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계기로 제2의 한류 붐을 일으키는 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APEC 회의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에 더해 국제 외교의 큰 장이 열리는 기회로 활용하면 한국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방미 때 트럼프 대통령을 APEC에 초청했고,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아울러 이번 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이 대통령의 친서를 중국 측에 전달한 박병석 전 국회의장도 “경천동지할 상황이 아니면 시 주석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방한이 다 이뤄진다면 관세 전쟁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는 때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가 한국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의장국인 우리 정부는 막판까지 점검해서 두 정상의 방한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시 주석이 방한하면 2014년 박근혜정부 이후 11년 만인데 한한령(한류 금지) 완전 해제 등의 조치도 이끌어내야 한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그의 방한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에도 훈풍이 불면 좋을 것이다. 2019년 남·북·미 판문점 회동 같은 ‘깜짝 만남’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