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의 한 대형 행사장. 지금은 시설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곧 홀로 서야 하는 예비자립준비청소년 30여명이 모였다. 시설 퇴소 전 향후 진로를 탐색해 보고 선제적으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삼성 희망디딤돌 예비자립준비청소년 진로 코칭 캠프-내일 찾기 워크숍’이 열린 날이다. 보호가 종료됐거나 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 정책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4~5명씩 조를 이뤄 8개 테이블에 둘러앉은 청소년들은 처음엔 낯을 가리는 모습이었다. 운영을 맡은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에서는 포스트잇에 나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장점, 오늘의 다짐 등을 적을 수 있게 준비했다. 그런 다음 뒷장에 25칸을 만들어 자기를 소개하고 25명의 사인을 받아오는 미션을 줬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이내 사라졌다. 청소년들은 테이블을 돌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차별을 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한다’ ‘얼굴’ 등 각양각색의 장점 소개와 함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케팅 기획자를 꿈꾸는 고등학생 장모(18)양은 “진로는 정했지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맞나 하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며 “이번 캠프에서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선생님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배모(21)군은 “캠프 주제인 ‘내일’이 미래이자 나의 일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어 마음에 와 닿았다”며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과 만나 공감대 형성이 잘 됐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는 예비자립준비청소년들이 다양한 직무를 직원·고객 입장에서 고민하고 해결해보는 ‘디자인싱킹’에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직업을 선택할 때 피상적인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진로 코치 역할을 하는 ‘희돌(희망디딤돌) 크루’로 동참했다. 100명 모집에 300명 넘게 지원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휴가를 내고 캠프에 참여한 이수빈(32) 삼성전자 반도체부문(DS) 프로는 “나도 혼자 미래를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며 “이 친구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캠프 둘째날에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 ‘삼성희망디딤돌 2.0’을 거쳐간 선배와의 대화가 진행됐다. 지역 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이모(27)씨는 “저에게 삼성희망디딤돌은 네이버 지도와 같은 존재”라며 “군대 전역하고 취업 고민으로 막막하던 때 저에게 최적화된 길을 알려줘 지금은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도 못 나오고 좋은 스펙도 없고 오르막길에서 굴리면 잘 굴러갈 것 같이 생긴 저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면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온라인 광고·홍보 실무교육을 받고 있는 박모(25)씨는 “공부나 취업 준비를 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못하는 친구들에게 삼성희망디딤돌 2.0을 추천하고 싶다”고 전했다. 셋째날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삼성웰스토리 등 현장 견학을 끝으로 3일간 이어진 캠프 일정이 마무리됐다.
캠프 참여 청소년들은 다음 달 진로 코치와 비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수료식을 갖는다. 삼성은 서울·경기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도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