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직장인에게 분주한 시간이다. 힘겹게 눈을 떠 세수도 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대중교통의 빈자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고, 예정된 업무와 점심 약속 등을 떠올리며 바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일쑤다.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삶 속에 거룩에 대한 갈망이 깃들긴 어렵다. 그런데 출근 전 더 이른 새벽을 깨워 하나님을 묵상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얻는 거룩으로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을 만났다.
기도로 새벽 깨우는 직장인들
여전히 무덥던 8월 넷째 주의 목요일. 어둠과 빛이 맞물린 시간인 오전 6시 즈음 서울 종로구 한 대형 커피전문점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른 출근길 모닝커피를 사러 온 직장인 같은 이들을 따라 들어서니 사뭇 다른 카페 풍경이 펼쳐졌다. 흔한 카페 음악 대신 찬양이 흐르고, 테이블 위엔 커피잔이 아닌 성경책과 헌금함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직장인 새벽기도모임 ‘홀리스타(Holy Star)’의 광화문 지점이다. 광화문 홀리스타 이진수(41) 팀장은 “홀리스타는 ‘거룩한 새벽을 깨우는 직장인들의 모임’을 뜻한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가 주관해 광화문 여의도 분당 신촌 등 서울 12곳에서 교파와 무관하게 기도하고픈 직장인들이 새벽예배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예배는 주중 매일 새벽 6시 30분에 드려진다. 월~목요일은 찬양과 말씀 기도 교제의 시간을, 금요일은 성경 통독으로 진행된다. 참여하는 연령대는 20대 청년부터 60~80대 장년까지 구분이 없다.
피곤한 직장인이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나오는 일이 가능한 것은 ‘말씀으로 무장해 출근하는’ 은혜 때문이다. 온누리교회가 파송해 홀리스타 예배를 돕고 있는 박성원(32) 전도사는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 듯 이곳에 나오는 직장인들은 예배와 기도, 말씀으로 무장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터를 거룩함으로 채우려는 이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새벽기도에 나온 지 13년째라는 조정원(32)씨는 “우연히 이곳에 하루 반주를 섬기러 왔다가 타 교인임에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에 마음이 열렸다”며 “신앙적으로 메말랐던 시기에 새벽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으로 무장해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큰 도전이 돼 시작한 게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고 전했다.
광화문 홀리스타의 가장 큰 특징은 멘토의 존재다. 이날은 2007년부터 18년 동안 이곳에서 새벽예배를 함께하며 청년들의 직장과 신앙 고민을 듣고 조언해 온 온누리교회 박혜원 권사의 팔순 축하 자리가 열렸다. 박 권사는 “젊은 직장인들이 평일에도 말씀 붙들고 살아가는 모습이 귀해 이곳을 찾아 함께 중보하게 된다”며 “무엇보다 믿음으로 검증된 청년들이 이곳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매일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가장 먼저 나와 예배 공간을 준비하는 30여명 스태프들은 그 시간이 수고가 아닌 감사라고 입을 모았다. 이 팀장은 “아침잠이 많지만 기도로 하루를 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게 된 뒤로는 새벽예배를 빠질 수 없게 됐다”며 “하나님께 첫 시간을 드릴 때 하루가 은혜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꼭 와서 그 은혜를 맛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휴일 아침 내놓은 새벽예배자
출근하는 날보다 더 일어나기 힘든 게 토요일 아침이다. 그런데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을 주님께 내어놓고자 새벽에 모이는 직장인성경공부모임(BBB·Business Bible Belt)이 있다. BBB는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목회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들이 리더가 돼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을 지켜가도록 돕는 초교파 평신도 연합 모임이다.
지난 23일 오전 6시30분부터 온·오프라인으로 드려진 BBB 새벽기도엔 20여명의 직장인이 참여했다. 서울 강남구 서울남부교회 교육관으로 나온 이들의 편한 복장에선 주말의 여유가 묻어났다.
몇 년 전 대기업에서 조기 명예퇴직한 역삼지역 모임 정규혁(57) 순장은 재직 당시부터 지금까지 23년째 BBB 토요 새벽기도에 참석한 멤버다. 그는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힘들 때는 기도 시간을 늘려 기도했다. 그런 어려움을 알기에 지금도 새벽기도에 나와 이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BBB 삼성역 지역 모임의 김흥유(59) 순장은 이날 예배 인도를 맡았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5~10절을 본문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지키며 기쁨으로 말씀을 붙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직장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크리스천으로 살자”고 강조했다. 이어 40여분간 직장 선교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기도한 뒤 소그룹 모임과 교제를 나눴다.
BBB에 함께한 지 1년 정도 됐다는 우윤정(46)씨는 “신앙생활이 지치고 직장생활이 힘들어 스스로 이 공동체를 찾게 됐다”며 “직장생활은 여전히 힘들지만, 토요일 새벽기도와 1대 1 멘토링을 통해 이젠 견딜 수 있는 영적 체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같은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는 이 새벽기도 모임을 ‘비전 공동체’라 부른다. BBB 양재 지역 모임 김은정(52) 순장은 “직장이 하나님이 주신 선교지고 나는 그곳에 파송된 선교사라는 태도를 갖게 되면 새벽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며 “직장에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많은 직장인이 BBB 공동체에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직장인 위해 새벽예배 늦춘 교회
새벽기도를 위해 자신의 직장 안이나 가까운 교회를 찾는 이들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선교회는 매주 수요일 오전 7시15분 새벽기도로 모인다. 신앙의 선배들이 40여 년 전 세운 기도의 터전이 지금도 후배들에게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선교회 팀장 박병찬(56)씨는 7~8년 전부터 사내 아침기도회에 참석해 왔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0여년 전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사내에도 기독 모임이 있지 않을까’ 찾아본 것이 계기였다”며 “예배에 빠지면 ‘오늘 무슨 일 있었느냐’고 챙겨주던 따뜻한 신앙의 선배들이 떠난 자리를 이제 내가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선교회는 교회 공동체와 달리 함께 회사 생활을 하는 동료들과 신앙의 고민을 나누고 임원과 리더, 그리고 곁의 동료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다. 박씨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매일 기도회에 나아가고 있다”며 “새벽기도는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가 은혜를 누리고 직장을 위해 중보하는 마음을 지키는 거룩한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교회에 요청해 새벽예배 공동체를 세워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LG전자 신우회 임직원들이다. 이들은 5년 전 매주 목요일마다 신우회 예배를 인도하러 오는 박경준(51) 섬길교회 목사에게 직장인을 위한 7시 새벽기도회를 해주길 먼저 요청했다. 박 목사는 “주중 새벽 40분에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며 예배한다.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큰 감동과 보람을 얻는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음 달 1일부터 1·2부 새벽예배 시간을 5시 30분과 6시 30분으로 30분씩 늦췄다. 다른 교회 교인이면서도 출근하는 길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전에 들러 새벽기도 2부에 참석하는 직장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이영훈 목사가 이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시간 변경을 결정한 것이다.
이 목사는 “새벽예배 뒤 바로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에게 간단한 간식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이 작은 섬김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에 힘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