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만년필과 국격

입력 2025-08-28 00:40

19세기 말 만년필의 등장은 동서 문명이 교차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를 상징한다. 조선 선비들이 여전히 벼루에 먹을 갈던 무렵, 서구에서는 모세관 현상을 응용한 만년필이 새로운 기록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인 발명가 루이스 워터맨이 만년필을 내놓은 건 조선에서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킨 1884년이다. 한쪽에선 구습타파를 외치던 개화파 척결에 여념이 없었고, 다른 쪽에선 혁신을 상징하는 필기 도구가 막 출현한 것이다. 정변이 성공했다면 만년필이 조선 지식인들 손에 더 빨리 쥐어졌을텐데, 1927년 동아일보에 ‘만년필 사용법’이 실린 걸 보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해방 전후 세대에겐 입학·졸업식 때 흔히 받던 선물이 만년필이었다. 교복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는 입신양명의 상징이라는 점에선 문방사우와 다를 게 없었다. 1930년대 볼펜의 등장으로 만년필의 지위는 흔들렸고, 컴퓨터 시대에는 설 자리가 더 줄었다. 그러나 만년필은 고급화 전략에 성공해 이름 그대로 샘물(fountain)같은 영감의 원천이라도 된 듯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산 만년필이 화제를 모았다. 백악관 방명록에 서명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펜을 탐내 선물로 건넸다. 문재인정부 시절 의전비서관이 ‘네임펜 굴욕’을 만회하려고 주문제작한 것과 같은 종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그 유명한 몽블랑펜으로 9·19 합의문 등에 서명한 반면 문 대통령이 네임펜을 선호해 낭패를 봤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 굴욕이 한·미 정상회담에선 반전이 일어났으니, 작은 필기구에 실린 국격을 실감케 한다. 만년필을 세상에 내놓은 이는 미국인 워터맨이었는데, 140년 뒤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을 탐냈다는 건 ‘마스가’ 조선업만큼이나 변모한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다. 다만 그 펜이 공동성명이나 협정문이 없어 방명록에만 쓰인 게 아쉽긴 하다. 만년필 잉크처럼 한·미 관계가 마르지 않는 신뢰와 우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