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K컬처와 K사회

입력 2025-08-28 00:37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석좌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의 성격을 ‘압축적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으로 규정하고 이를 이론화하는 작업을 30년 가까이 계속해 왔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제출된 압축적 근대성은 근래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장 교수는 2010년 영어로 출간한 자신의 책 ‘압축적 근대성하의 한국’이 중국에서 ‘단샹제서점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얼마 전 알렸다. 이 책은 지난해 초 중국에서 번역 출간돼 초판이 매진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단샹제서점문학상은 베이징의 유명한 인문학 서점이 주는 출판·문학상이다.

사회과학 출판사로 유명한 영국의 폴리티 프레스도 장 교수의 연구에 주목해 왔다. 2023년 한국 학자 원작으로는 처음 장 교수의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를 출판한 데 이어 올해 후속작인 ‘압축적 근대성의 위험’도 펴냈다.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는 지난 7월 중국에서 번역돼 나왔고, ‘압축적 근대성의 위험’도 중국 출판 계약이 체결됐다. 중동지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 교수는 지난 4월 모로코 왕국학술원 초청으로 방문해 그 산하 기관인 고등학술번역원과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 아랍어판 출간을 합의했다.

한국을 모델로 한 사회이론에 대한 국제 학술계의 이 같은 관심은 분명 이례적인 현상이다. K컬처, K문학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요즘 K사회에 대한 담론도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인지 주시하게 된다.

압축적 근대성이란 속성 근대화가 한국 사회에 조성한 근대성의 독특하고 혼란한 양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압축적 근대성은 여러 근대성과 근대화 주체가 공존하고 경합하는 다중근대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 시대 일본에 의해 이식된 식민지 근대성이 잔존하고, 해방 이후 주로 미국을 기준으로 한 제도주의 근대성,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자본주의 근대성,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주의 근대성이 공존한다. 한국인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유교 기반의 신전통주의 근대성, 시민 저항의 역사에서 형성된 자유주의적 민중 근대성도 나타난다. 장 교수는 그래서 “한국은 일종의 ‘멀티플렉스 극장사회’로의 성격을 띤다”고 썼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라고 여겨져온 압축적 근대화와 그로 인한 압축적 근대성이 실은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탈식민지 국가들이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압축적 근대성은 일상적으로 관찰된다. 압축적 근대화는 현대 중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으로 중국 지식인들이 책에 주목하는 것은 자기 사회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K컬처가 세계에 통하는 것은 압축적 근대성이 세계의 보편적 경험이자 현실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K컬처에는 매우 다양한 문명 요소들이 한국인의 경험이나 감정과 어우러진 역동적인 복잡성이 있는데, 이는 압축적 근대성의 문화적 표현이다.

압축적 근대성이 매력적으로 발휘된 게 K컬처라고 한다면, 그 어두운 부분은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여러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장 교수는 책에서 압축적 근대성의 핵심 문제로 경제생산과 사회재생산의 불균형을 꼽는다. 그는 “압축적 근대성이 압축적 (경제) 성장과 압축적 (사회) 박탈의 조합”이라며 경제생산을 극대화하느라 사회재생산을 희생시켰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결혼·출산 기피, 돌봄과 복지의 취약성,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늘어나는 부채 등이 사회의 지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 역시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다. 사회재생산 위기를 풀어가는 한국의 사회 모델이 또 하나의 K가 될 순 없을까.

김남중 편집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