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세와 해외 영토 확장으로
미국의 새 위상 만든 매킨리
"힘을 과시하며 협상하라"며
대중적 인기 누린 루스벨트
초강대국의 힘을 과시하고
명성 추구하는 트럼프와 겹쳐
미국의 새 위상 만든 매킨리
"힘을 과시하며 협상하라"며
대중적 인기 누린 루스벨트
초강대국의 힘을 과시하고
명성 추구하는 트럼프와 겹쳐
한·미 정상회담이 이렇게 주목받은 경우도 흔치 않으리라. 세계 정상들이 앉았던 그 자리에 우리 대통령이 있고, 오른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앉아 있다. 직각 방향으로 배열한 긴 의자에 J 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얼굴이 보인다. 다소 무질서하게 서 있는 기자들 사이로 앉아 있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지난 2월 말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파국적인 설전 이후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25일 백악관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의 공개간담회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성에 대응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능숙한 화술과 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섬세하게 준비된 한국 측 대처는 정교하고 전략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에게서 120여년 전 신생 강대국 미국을 이끌었던 두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인용하는 미국 대통령은 윌리엄 매킨리 25대 대통령이다. 그는 고율 관세와 해외 영토 확장으로 19세기 말 미국의 새로운 위상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최고봉의 이름을 데날리에서 매킨리로 되돌려놓았다. 그것도 트럼프 2기를 시작하는 취임식에서 말이다. 40%대의 고율 관세로 미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매킨리관세법은 그를 ‘보호무역주의 대통령’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동시에 그는 스페인·미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등을 확보해 미국을 본격적인 제국으로 올려놓았다.
매킨리 대통령 당시 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대통령은 1901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항상 꼽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강한 국가’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매킨리 시대의 산업 보호와 해외 영토 확장에서 출발해 진보주의적 개혁과 세계적 지도력으로 유명해졌다.
매킨리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성과가 루스벨트 대통령의 출발점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를 외교 원칙으로 삼았다. 1904년 파나마 운하 건설, 카리브해와 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대는 매킨리 대통령의 해외영토 정책을 전략적으로 계승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팽창주의자가 아니었다. 모로코 문제를 중재하고 러·일 전쟁에 개입해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성사시켰다. 이 공로로 미국 대통령 최초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무력과 협상, 두 가지 수단을 병행한 그의 외교는 매킨리 시대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관세정책은 어떤가. 매킨리 대통령 시절 고율 관세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유지됐으나 그는 독점기업을 규제하는 ‘트러스트 파괴자’로서 미국 경제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데 더 집중했다. 경제에서는 관세보다 공정 경쟁을 강조했고, 외교에서는 영토 확장에서 평화 중재자로까지 역할을 넓혔다. 두 대통령의 정책은 연속선 위에서 새로운 변주를 거듭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두 인물의 철학과 방식을 그의 임기 4년 안에 모두 구현하려고 한다. 그가 세계를 상대로 시작한 관세전쟁은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세우고 외국 시장의 빗장을 열고자 했던 매킨리 대통령의 노선을 계승한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루스벨트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 ‘약자 편에 선 강한 개혁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노동자 보호, 반트러스트 정책, 환경보호를 주도했고 무엇보다도 “힘을 과시하며 협상하라(Carry a big stick)”는 외교 철학으로 유명하다. 또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강력한 미국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계승자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캐릭터와 정치 스타일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닮아 있다. 대중 앞에서 호쾌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며,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리더’에 집착한다. 이러한 성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MAGA)’ 지지층에게 절대적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이 매킨리 대통령을 흠모한다면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다. 산업 보호와 초강대국의 힘의 과시, 그리고 대중적 카리스마와 국제적 명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두 전임자의 압축된 구현이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