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장난감 매장에서 지난 6일 복면을 쓴 도둑들이 침입해 7000달러(약 970만원)어치 라부부 인형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창고에서는 3만 달러어치 라부부가 도난당했고 경찰은 지난 11일 용의자 두 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라부부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로 품귀 현상을 빚자 인형을 노린 절도 사건이 잇따라 벌어진 것이다.
토끼처럼 긴 귀에 큰 눈, 삐죽 튀어나온 9개의 이빨을 가진 라부부는 중국 완구업체 팝마트의 대표 상품이다. 귀엽다기보다는 다소 못생긴 듯한 이 인형이 세계적으로 신드롬적 인기를 얻고 있다. 미 CNBC방송은 최근 기사에서 “중국 브랜드들이 전 세계적으로 호감을 얻으면서 중국의 소프트파워도 커지고 있다”며 “그 중심에 라부부 인형이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는 “해외에서 문화적 위상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중국이 성공을 얻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전했다.
라부부 한정판 2억원에 팔려
라부부는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룽이 디자인한 캐릭터로 2015년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에 처음 등장했다. 팝마트는 2019년 룽과 계약을 맺고 라부부 피겨(피규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23년 10월 첫 번째 라부부 키링이 출시된 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라부부의 인기는 독특한 외형, 희소성과 수집 욕구, 셀럽(유명인) 마케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 팝스타 리한나, 모델 킴 카다시안 등이 라부부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면서 인기가 급속히 확산됐다. 지난 16일 팝스타 마돈나의 생일 파티에는 라부부 모양의 대형 케이크가 등장했다.
포장을 뜯기 전 어떤 라부부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박스’ 마케팅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라부부 키링 가격은 30달러(약 4만원)지만 한정판은 가격이 수십 배 이상 치솟기도 한다. 지난 6월 베이징 국제 경매에선 한정판 라부부 인형이 15만 달러(약 2억원)에 낙찰됐다. LA나 런던 매장에선 새벽부터 줄을 선 고객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품귀 현상에 ‘짝퉁’ 라부부도 대량 유통되고 있다. 중국 세관은 가짜 라부부 단속에 나섰다. CNN은 “사실상 거의 모든 유명 브랜드의 모조품을 쏟아내는 중국이 라부부 지적재산권에 집착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제조사 팝마트 매출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팝마트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38억8000만 위안(약 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4% 급증했다고 밝혔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팝마트 주가는 지난 1년간 600% 가까이 상승했다.
러킨커피는 스타벅스에 도전
라부부 외에도 최근 여러 중국 브랜드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 토종 브랜드 러킨 커피(중국명 루이싱 커피)는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에 2개의 매장을 열었다. NBC방송은 “글로벌 커피 체인 제왕 스타벅스가 루이싱이라는 민첩한 중국 스타트업과의 경쟁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비디오 게임은 수십억 달러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고전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지난해 8월 출시 한 달 만에 전 세계에서 2000만장 팔렸다. 이에 힘입어 중국 게임의 지난해 3분기 해외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1% 오른 51억7000만 달러(약 7조930억원)로 집계됐다.
중국이 싸구려 상품, 엄격한 검열 등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자국 업체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점차 개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BBC는 “베이징의 야망에 대한 서방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일부 분석가는 중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개발부터 소매업에서까지 이렇게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상승하고 있다는 신호는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영국의 글로벌 브랜드 평가기관 브랜드 파이낸스가 지난 2월 발표한 ‘2025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수’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로 선정됐다. 2024년 조사보다 한 계단 올라 처음으로 영국을 제쳤다. 유엔 193개국 17만명을 대상으로 무역, 국제관계, 교육·과학, 문화 등 분야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다. 미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도 지난 5월 중국 호감도가 8.8점에 달해 -1.5점인 미국을 크게 앞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1월 미국 호감도가 20점을 넘고 중국은 약 -5점이었던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다만 향후 브랜드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파워가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나온다. CNBC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이미지를 재편해온 만큼 앞으로도 자국 브랜드들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도록 허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전했다. 라부부 인기가 장기적으로 계속될지 불확실하다는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디즈니나 일본 프랜차이즈 포켓몬과 달리 라부부는 풍부한 배경 스토리나 미디어 확장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