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의 늦여름 매력 속으로… 초록 그늘 아래 보랏빛 융단에 설레는 女心

입력 2025-08-28 02:11
초록 메타세쿼이아 아래 보랏빛 맥문동이 어우러진 경북 영천시 망정동 '우로지 자연숲'. 나무 그늘이 짙어 더운 날에도 찾는 이가 많고, 맨발걷기 장소로도 인기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든 떠날 생각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경북 영천의 매력 속으로 빠져 보자. 영천의 늦여름은 보랏빛·분홍빛으로 유혹한다.

먼저 망정동 언하공단 인근에 있는 ‘우로지 자연숲’이다. 숲은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시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완충녹지를 활용, 2021년 조성된 도심형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560m 길이 메타세쿼이아 길의 맥문동이 주인공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100여 그루의 초록 나무 아래 수줍게 웃는 맥문동의 어울림이 발길을 이끈다.

맥문동은 주로 그늘에 많이 심는다. 높이는 30~50㎝로 뿌리줄기가 짧고 굵으며, 수염뿌리는 가늘고 긴데 어떤 것은 굵어져서 덩이뿌리가 된다. 잎은 짙은 녹색으로 난처럼 늘씬하다. 그 위에 꽃줄기가 떠 있는 듯 황홀하게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데 마디마다 3~5개씩 모여 달렸다.

우로지 산책로는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 그늘이라 뜨거운 날씨에도 많이 찾는다. 맨발걷기도 많이 한다. 황톳길도 따로 있고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LED 경관 조명등 58개 등도 설치돼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다.

자연숲 인근에 우로지(牛老池)가 있다. 350여 년 전인 1670년쯤 축조된 저수지라 한다. 이름이 우로지인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옛날 사람과 소가 흙을 등에 지고 날랐는데 너무 힘들어 울면서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우로지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저수지를 만드는데 둑이 자꾸 무너지자 ‘동네에 늙은 소가 계속 울고 있으니 그 소를 못 둑에 묻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말에 그 소를 못 둑에 묻었더니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소를 기려 우로지라 했다는 이야기다.

황토 탐방로와 수중 음악분수 등을 갖춘 우로지.

우로지 둘레에 1560m의 황토 포장 탐방로와 산책길, 180m의 저수지 관찰로, 팔각정자 등이 조성돼 있다. 길이 102m, 폭 12m의 수중 음악분수와 함께 경관조명, 안전울타리, 수변무대, 포토존 등도 설치됐다. 최대 높이 80m의 고사분수, 3D·2D 분수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영천에는 우로지 생태공원 말고도 맥문동이 가득한 숲이 또 있다. 화북면 자천리 오리장림이다. 400여 년 전부터 자란 숲의 길이가 5리(2㎞)에 달해 이름 붙었다. 오랜 역사를 입증하듯 450년이 넘는 노거목들이 다양한 자태를 자랑한다. 아름드리 거목 숲으로 지름 2m, 높이 10여m 이상의 나무 3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굴참나무와 은행나무를 비롯한 10여 종이 넘는 나무들이 우거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층 혼유림이다. 특이하게도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함께 자라는 연리목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노거목 아래 S자 맥문동 길이 아름다운 오리장림.

숲은 1982년 영천시 ‘천연보호림’으로, 1999년에 다시 ‘천연기념물 제404호’로 지정됐다. 오리장림도 원형을 많이 잃었다. 영천시와 청송군을 잇는 35번 국도가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숲을 동서로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많은 고목이 잘려나갔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숲 일부가 사라지는 피해를 겪었다. 1972년 이 숲의 바로 옆에 자천중학교가 설립되면서 일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게 됐다. 현재 오리장림의 면적은 6600여㎡이고, 길이는 5리의 반인 1㎞ 남짓이다.

규모는 줄었지만 숲은 왕버들 초록 그늘 아래 보라색 융단이 깔린 것 같은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울퉁불퉁한 나무 사이로 산책하기 좋게 다듬어진 길 양옆으로 보라색 꽃밭이 이어진다.

은행나무로 유명한 임고서원에 핀 붉은 배롱나무꽃.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은 오랜 세월 묵묵히 서원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수령 500년이 넘고 높이가 30m, 둘레가 5.95m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여름에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발길을 붙든다.

여름철 시원하고 짜릿한 체험도 가능하다. 보현산댐 집와이어가 제격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 출발지에서 1.4㎞ 거리를 최대 시속 100㎞의 속도로 하강하면 스릴과 함께 산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보현산댐 X자 모양 주탑의 출렁다리와 집와이어.

집와이어 아래로는 2023년 8월 30일 개통한 출렁다리가 보현산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총 길이 530m로 국내 2번째 길이를 자랑하며 경간장(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 길이는 350m로 국내 최대 규모다. 별을 형상화한 X자 모양의 주탑이 특징이다.

여행메모
우로지 자연숲 건너 무료 공영주차장
별빛촌 목요장터와 별빛나이트투어

영천 우로지에 가려면 대구포항고속도로 북영천나들목이 편하다. 요금소 앞에서 영천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한 뒤 영천요양병원에서 500m 정도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미길 방향으로 좌회전해 직진하면 오른쪽에 우로지가 보인다. 조금 더 직진해 '우로지 자연숲' 표지판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동부지구대 옆에 무료로 운영되는 망정2공영주차장이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 건너편이다. 저수지 변에 주차해도 된다.

오리장림 인근 자천중학교 폐교 자리에 체험센터와 카페가 들어섰다. 바로 옆에 무료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우로지에서는 9월까지 매주 목요일에는 '별빛촌 목요장터'가 열리고 있다. 지역 농산물과 특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도심형 직거래 장터다.

임고서원 주변에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며 카페거리가 조성돼 있다.

영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천체 관측 망원경을 보유한 보현산천문대가 있는 도시로 맑고 깨끗한 하늘 덕분에 별 보기 좋은 곳이다. 영천의 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별빛나이트투어'다. 참가비는 1만원으로 낮에는 영천의 대표 명소를 둘러보며 건강머핀·과일청 만들기, 서바이벌 게임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밤에는 매직쇼·스타파티·별 관측 등을 즐길 수 있다.



영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