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錦江)은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해 서해로 유입하는 한국 6대 하천 중 하나다. 전북 진안의 용담호를 거쳐 충북 옥천에서 대청호로 흘러든다. 산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며 수려한 경치를 빚어놓았다. 풍광 좋은 옥천의 금강 수계에도 누정(樓亭·누각과 정자)이 세워져 있다.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대청호 변에 청풍정(淸風亭)이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청풍정은 조선 후기 참봉 김종경이 세웠으나 1900년쯤 화재로 소실되고 1980년 대청댐 준공으로 수몰됐다. 이후 1996년 옥천군이 현 위치에 복원했다. 수몰 전 청풍정은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절벽에 금강물이 부딪쳐 소를 이루고 버드나무 길이 길게 펼쳐져 멋진 풍광을 자랑하던 곳이다.
청풍정을 등지고 왼쪽으로 돌면 검은색 바위에 글이 새겨 있다. 명월암(明月岩)이다. 조선 시대 기녀 명월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 후기 개화사상가 김옥균(1851~1894)은 1884년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쫓기는 몸이 되자 기녀 명월과 함께 옥천으로 숨어든다.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피신처로 좋은 곳에서 김옥균은 꿈을 접고 명월과 소일을 하며 기약 없는 날을 보낸다. 하지만 김옥균은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고 세상 소식도 듣지 못해 근심이 쌓여간다.
명월은 김옥균이 자신 때문에 이곳에 머물며 큰 뜻을 펼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김옥균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청풍정에 써 놓고 명월암에 올라 금강물로 뛰어들어 숨을 거둔다. 김옥균은 명월의 시신을 거두고 바위에 그의 이름을 따서 ‘明月岩’이라는 글자를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역사적 기록에는 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떠난 것으로 적혀 있다. 김옥균이 동명이인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사실 여부를 떠나 청풍정과 명월암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근 군북면 추소리에는 부소담악(芙沼潭岳)이 대청호 위에 떠 있다. 부소담악은 산줄기였던 곳이 대청호 담수로 물에 잠기면서 칼날 같은 능선만 수면 위에 길게 드러난 곳이다. 물에 잠긴 부분의 흙이 씻겨나가면서 바위가 드러나 바위 병풍을 둘러놓은 풍경이 됐다. 조선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작은 금강산’이라 극찬했을 정도다.
이곳에 마을 이름을 딴 정자 추소정(湫沼亭)이 있다. 추소정에 오르면 병풍바위 끝자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듯한 형상이다.
군북면 이백리에는 이지당(二止堂)이 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인 조헌(1544~1592)이 뛰어난 경치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에 조헌의 사후 80여 년 뒤인 1674년 무렵 김만균이 조헌의 업적을 기리고자 세웠다.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금강 지류 서화천 변에 자리한 이지당은 정사(精舍·학문 연구나 정신 수양을 위한 건축물) 건물 양쪽에 누(樓)를 덧붙인 독특한 양식이다. 고택의 단아한 아름다움과 함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변 자연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옛 정취를 즐기기에 좋다. 2020년 서당 건물 최초로 보물에 지정됐다.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 아래 독락정(獨樂亭)도 빼놓을 수 없다. 금강이 ‘한반도 지형’으로 휘감아 도는 옥천의 명소에 1607년 절충장군 중추부사를 지낸 독락옹(獨樂翁) 주몽득(1573~1658)이 세웠다. 처음엔 정자였으나 후에 서당으로 이용됐다. 산과 강을 배경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세종시에도 같은 이름의 정자가 있다.
청성면 산계리 상춘정(常春亭)이 독특한 분위기로 이목을 끈다. 충북 보은 속리산에서 시작해 청성면에 이웃한 청산면을 지나 금강에 합류하는 보청천(保靑川) 물길에 솟아 있는 20m 높이의 독산 위에 자리를 틀고 있다. 하천 이름은 보은과 청산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청성·청산 일대를 흐르는 보청천은 애실보, 범딩이보, 새들보 등 7개의 보(洑·하천 유량 조절을 위한 저수시설)로도 유명하다. 독산 바로 아래 있는 산성보도 그중 하나다. 이른 아침 안개와 노을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으로 유명하다.
청산면은 방정환 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한 동요 작곡가 정순철 선생의 고향이다. ‘졸업식 노래’ ‘짝짜꿍’ 등 유명한 동요와 노래를 작곡한 인물이다.
옥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