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호우 등 ‘기후 재난’의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손실을 막아주는 보험의 기능은 그만큼 확대되지 못한 상태다. 탄소중립 촉진과 기후재난 대응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보험 업계도 ‘지수형 보험’을 비롯한 새로운 사업 모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영국계 보험사 에이온(Aon)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3680억 달러(약 514조2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렇게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험금 지급액은 1450억 달러로 40%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60%의 손실은 여전히 보험을 통해 방어되지 않은 ‘보장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기후 변화가 폭염·수해 등 기후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은 연중 평균기온이 14.5도에 이르러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올해는 지난달에만 25도 이상의 열대야가 23일을 기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시간당 70~80㎜ 넘는 비가 쏟아졌다.
문제는 보험금 지급까지 손해사정을 거쳐야 하는 전통적 실손보험으로는 갈수록 커지고 심각해지는 기후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기후 재난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취약계층은 재난 발생 이후 보험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보험료가 치솟는 등 ‘겹악재’에 시달릴 수 있다.
이에 보험 전문가들과 업계에서는 ‘지수형 보험’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다. 사전에 합의된 조건 또는 수치에 도달하는 경우 별도의 손해사정을 거치지 않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보험이다. 산불·홍수 등 재난에 휘말린 이재민도 구체적인 손실을 증빙하기 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생계 자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수형 보험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일조량이나 바람 같은 기상 상황에 크게 좌우되는 특성으로 항상 막대한 변동성을 수반한다. 발전사업자는 보험 보장 없이 안정적인 공급과 수입 보장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수형 보험에 가입할 경우 날씨 조건을 지급 요건으로 삼아 해당 리스크를 보험사에 전가할 수 있다.
지수형 보험 시장은 세계적으로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발맞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글로벌 마켓인사이트는 지수형 보험의 세계 시장 규모가 2023년 148억 달러에서 오는 2032년 393억 달러까지 연평균 11.5%씩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일부 보험사가 선제적으로 지수형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활성화 단계에는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도 변동성을 줄여줄 지수형 상품의 본격 도입을 고대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