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천국 누명 쓴 서핑명소… ‘한국판 니스’ 양양의 추락

입력 2025-08-27 00:05
최근 유흥·퇴폐적 이미지를 넘어 '범죄 우범지대'처럼 왜곡된 이미지로 강원도 양양군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악성 괴담과 소문에 실추된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해 양양군 상인들이 현수막을 제작해 내걸기도 했다. 연합뉴스

‘한국판 니스’를 꿈꾸며 MZ세대의 여름을 평정했던 강원도 양양군이 예상치 못한 이미지 추락으로 주춤하고 있다. “양양은 불장난하는 곳”이라는 한 지역 구청장의 비하 발언에 더해 근거 없는 루머 확산이 상처를 키웠다. 일각에서는 치안·질서 등 기본 인프라가 미흡한 상태에서 외지인 중심 흥행을 과도하게 키운 부작용이 양양을 덮쳤다는 진단도 나온다.

2010년대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양양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서핑 성지이자 해변문화의 상징이었다.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팝업스토어와 해변 파티가 겹겹이 붙으며 급성장했다. 올여름만 보면 나쁘지 않다. 강원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올해 해수욕장 개장 기간 강원 전체 해수욕장 누적 피서객은 857만여명으로 전년 대비 11.3% 늘었고, 양양도 약 83만명(6.8%)이 찾으며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성수기만 벗어나면 흐름이 달라진다. 강원관광재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양양 관광객은 142만8065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21% 감소했다. 같은 기간 강릉시(0.26%), 동해시(9.99%), 속초시(2.09%)가 선방한 것과 대비된다. ‘비성수기 체력 저하’가 분명해진 대목이다. 2023년 7월과 올해 7월을 놓고 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강원지역 주요 해수욕장 가운데 속초·강릉·동해는 10%에서 많게는 30%대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양양은 24만4633명으로 전년 대비 -32%라는 감소율을 보였다.


양양 열풍이 식은 주요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지목된다. 서핑 문화가 다른 지자체로까지 확산되며 양양만의 차별점이 약해졌다. 치명타는 급격히 악화된 이미지였다. 본래 가족 휴양지 이미지가 강했던 양양은 2023년 이후 서핑과 야간 파티가 결합하며 ‘헌팅’ 논란은 물론 소음·쓰레기·흡연 민원 등 불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난봄 가족과 함께 양양을 찾았던 이모(21)씨는 “새벽에 잠깐 산책을 나갔는데 오전 4시가 다 됐는데도 술병을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양양의 사례는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다. 마케팅 실패나 트렌드의 유효기간 종료 탓이 아닌 ‘관리되지 않은 질서 유지 체계’를 원인으로 짚고 있다. 서핑이라는 자생적 콘텐츠와 소셜미디어 인증 문화로 폭발적 흥행을 거뒀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공 인프라가 부재했다는 것이다. 양양은 강원도에서 경찰서가 없는 유일한 자치단체로, 주민들의 설치 요구가 수년째 미뤄져 왔다. 유흥객의 과도한 점유와 성 관련 의혹에 강력 단속과 고발로 대응했지만 가족 단위 수요가 다수 이탈한 뒤였다. 양양은 올여름 해수욕장 폐장 이후 이달 말까지 안전 관리를 이어가며 보완에 나섰다.

양양의 사례를 보며 장기적 관광 환경을 설계·운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강릉은 유아 해수풀장, 생존수영 교실로 비유흥·안전형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속초, 고성도 미디어아트쇼, 반려견 동반 해수욕장 등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필요한 건 더 큰 홍보가 아니라 연중 체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제언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속 가능한 관광은 외지인 ‘관람형’이 아니라 지역민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구조에서 나온다”며 “외래 타깃에만 치중하면 반짝 흥행 뒤 후유증이 크다. 이른바 ‘○리단길’이 빨리 피고 지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다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