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비영리재단인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지난 1월 글로벌 리더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슈왑재단, 록펠러 자선자문기관과 함께 ‘규제 순응을 넘어: 혁신금융을 통한 임팩트 내재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간 국제 공공개발 중심으로 논의됐던 ‘성과기반금융’을 기업 관점에서 조명한 내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보고서 서문에서 “기업은 경제적 성공과 함께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도 기여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성과기반금융이 경영 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과기반금융의 핵심은 선한 의도가 아닌, 실제 성과와 연계해 자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공공기구가 기존 임팩트 투자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자금조달 메커니즘으로서 제안하면서 등장했다. 세부적으로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사업의 목표를 사전에 합의하고 달성 여부에 대해 제3의 독립기관이 객관적으로 측정하며, 목표 달성 시에만 투자자에게 원금 및 수익금을 상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과기반금융은 날로 복잡해지는 공급망 전반에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심는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경영 전략으로 도입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펩시코 멕시코는 지난해 국제금융공사(IFC)와 협력해 자사 공급업체들이 탄소배출 감축, 아동노동 근절 등의 목표를 달성하면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성과기반금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프로그램 도입 후 공급업체들은 자발적으로 물류 경로를 최적화해 탄소 배출량을 20% 가까이 줄였다.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던 아동 노동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한다. 공급망 안전성 지표 역시 25% 이상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업체들이 지속가능성 기준을 준수하도록 유도했더니 기업은 규제 대응을 넘어 공급망 투명성 확보, 리스크 분산 등의 효과까지 거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성과기반금융이 단지 규제에 대응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위험 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혼자 관리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공급망 전체와 공유함으로써 앞으로 닥칠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효과도 있다.
국내에선 SK그룹이 일찌감치 사회성과인센티브(SPC)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 도입 10년이 된 SPC는 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창출된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 그에 맞는 보상을 한다는 게 핵심이다. SK그룹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한 사회적가치연구원을 통해 지난 10년간 총 468개 사회적 기업에 715억원의 현금성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SPC 참여 기업들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약 5000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보상이 더 큰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과기반금융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점은 분명하지만 수익 모델이 없는 영역에서 유효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유니레버 나이지리아의 경우 지역 재활용 스타트업 위사이클러(Wecyclers)와 협력해 플라스틱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 사업에 임팩트 투자 개념을 도입했다. 쓰레기를 버릴 곳이 마땅치 않은 빈곤층 지역 주민들이 재활용품을 모아 오면 그 무게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했다. 플라스틱 수집량, 고용 창출, 노동자 임금 등의 지표에 맞춰 성과가 입증될 경우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유니레버는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화가 어려웠던 순환경제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위사이클러는 노르웨이의 투자 회사인 노르펀드 등 여러 기관의 투자를 유치하며 나이지리아 전역으로 사업을 넓혀가는 중이다.
프랑스 최대 금융그룹인 BNP파리바는 영국 사회주택협회를 대상으로 성과기반 구조의 대출 상품을 개발했다. 탄소배출 감축, 일자리 창출, 기술 교육 제공 등의 목표를 달성하면 이자율이 낮아지는 방식이다. 대출 받는 기관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자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국제 개발 분야 싱크탱크인 브루킹스는 전세계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을 위해 성과기반금융의 활용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