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로 들어선 상권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쇠락의 속도를 늦추고 반등의 전환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산 해운대와 서울 신촌·이대 상권은 이 같은 과제에 맞닥뜨렸다. 여름이면 발 디딜 틈 없던 해운대에서는 지난 10년간 폭발적으로 늘던 점포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청춘 문화의 상징이던 신촌·이대 상권은 쇠락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상권이 새로 기회를 만들려면 ‘이야기를 축적할 공간’을 만들고 콘텐츠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관광지’ 해운대는 최근 정점에서 내려오는 상황이 감지된다. 지난해 10년 만에 점포 수가 줄었다. 국민일보가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부산광역시 자료에 따르면 해운대의 휴게음식점은 2015년 938곳에서 2023년 1582곳까지 지속 증가했으나 지난해 1521곳으로 처음 감소했다. 일반음식점 역시 2015년 4128곳에서 2023년 4939곳까지 증가한 뒤 지난해 4731곳으로 200곳가량 폐업했다.
같은 기간 해운대의 폐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천 의원실에 따르면 해운대 소재 일반음식점의 연간 폐업 수는 280→755곳으로 2.7배, 폐업률은 6→15%로 2.5배가량 치솟았다. 휴게음식점 역시 172곳에서 479곳(2.8배), 폐업률은 18%에서 31%로 급등했다. 여름, 주말, 낮에 수요가 편중돼 ‘먹고 빠지는’ 동선이 반복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올해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처음 연간 3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도시 전체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까지 누적 외국인 관광객은 106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단 기간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내부 상권의 체류 분배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해운대가 하향길에 들어선 데 반해 부산 광안리·서면 전포카페거리는 ‘방문객의 유입을 체류’로 바꾸며 체력을 키웠다. 광안리는 드론 라이트쇼, 해변 야경, 카페거리로 ‘밤에 머물 이유’를 만들어 체류 인구를 확보했다. 서면은 전포카페거리와 복합몰로 청년층을 붙잡아 핫플 집적 효과를 창출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4)씨는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 해운대를 후순위로 놓는 추세”라며 “친구들과 바다를 보러 가면 보통 광안리로 간다. 요즘 해운대는 먹고 즐기러 가기보다 숙소를 잡으러 가는 곳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외국인이 가장 선호한 부산 명소는 광안리(58.5%)가 해운대(40.8%)를 밀어냈다. 해운대 선호도는 2년 전(78.4%) 대비 무려 37.6% 포인트 감소했다.
대표 대학가인 서울 신촌·이대 상권은 침체가 짙어지고 있다. 20여년을 버틴 신촌역 2번 출구 앞 투썸플레이스·롯데리아, 3번 출구 맥도날드 등 ‘터줏대감’ 매장들은 근 몇 년 사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신촌·이대 중대형 상가의 올 2분기 공실률은 11.3%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분기(7.6%) 대비 5% 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 또한 올해 2분기 8.5%로 팬데믹 이전(5.2%)보다 3.3% 포인트 올랐다.
한때 신촌은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홍익대 등 4개 대학 수요에 외국인 관광객까지 더해 ‘만남의 장소’로 전성기를 누렸다. 1999년 스타벅스 한국 1호점, 2002년 투썸플레이스 1호점이 문을 연 상징성까지 갖췄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임대료 상승이 가팔라지고, 홍대·합정·연남으로 문화·유흥 수요가 이동하면서 쇠퇴가 시작됐다. 코로나19 당시에는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대학생 트래픽에 기대온 전통 상권이 새로운 소비 경로와 유통 지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학가는 화장품·의류 구매의 온라인 전환, 성수 연무장길, 용산 용리단길 같은 신흥 핫플레이스로의 수요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 진행된 팝업스토어 1400여건 중 3분의 1은 성수동이 위치한 성동구에서 열렸다. 신촌·이대뿐이 아니다. 지난 1분기에는 동국대 인근 충무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22.5%까지 치솟았다. 성신여대 앞 상권도 10%를 넘어서는 등 대학가 전반의 침체가 감지되고 있다. 개강 특수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가 상권의 지속 가능성을 가른 측면이 있다. 신촌·이대가 트렌드에 휩쓸린 가운데 홍대는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민첩하게 대응했다. 조훈희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2000년대까진 대학가 같은 전통 상권이 뚜렷했지만 요즘은 상권 교체 속도가 가파르며 젠트리피케이션도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면서 “조금 뜬다 싶으면 과열 출점과 임대료 상승이 겹쳐 상권이 스스로 과열된다”고 진단했다. 공항철도 개통으로 홍대입구역이 공항 직결 환승역이 되면서 외국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 것도 효과를 봤다. 조 교수는 “결과적으로 홍대 상권이 반사이익까지 흡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