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국방비 증액을 통한 미국 첨단 무기 구매 의사를 선제적으로 밝혀 미측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국방 전력 강화는 고도화된 북핵 대응을 위해 우리 정부가 계획했던 의제였다. 한국의 ‘필요’를 미국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로 먼저 적극 제안하며 ‘윈-윈’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방비 증액 의사를 적극 설명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워싱턴DC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산 무기 구매에 대해 “미국은 방산업 중 경쟁력 있는 분야를 언급했다”며 “우리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미국의 첨단 무기를 구매할 의사가 있어 서로 간 ‘의사 합치(meeting of minds)’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 후 진행한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연설에서도 “국방비를 증액하겠다. 늘어난 국방비는 우리 군을 스마트 강군으로 육성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첨단 무기 구매는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 대응전략으로 풀이된다. 동맹 현대화는 국방비 증액 외에도 주한미군 규모 축소 및 전략적 유연성 확대, 대중 견제 동참 등 한국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방향까지 포괄한 개념이다. 우리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국방비 증액을 의도적으로 선제 부각해 동맹 현대화의 논의 영역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위 실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동맹 현대화의 주안점은 연합 방위능력을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는 방향”이라며 “(미국과) 큰 방향에서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 이번 회담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조정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증액하는 논의도 없었다고 못 박았다. 위 실장은 “오늘까지도 (SMA) 논의는 없었다”며 “국방비 증액 차원에서 무기 구매나 국방력 개선 방향이 모색될 뿐 SMA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비 증액을 통한 첨단 무기체계 구축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악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국방비를 늘리려면 올해 국방예산인 61조2469억원의 약 2배인 132조원 수준까지 재정 지출이 증가한다.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B-2 스텔스 폭격기를 콕 집어 언급하며 “한국이 이렇게 뛰어난 (미국산) 군사장비를 구매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B-2 폭격기는 대당 가격만 2조7000억~3조원으로 추정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자재정 운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단기간 국방비를 큰 폭으로 늘리는 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환 이누리 기자, 워싱턴=최승욱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