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입력 2025-08-27 01:07

‘One Way(일방통행)’ ‘Wrong Way(잘못된 길)’ ‘Exit(출구)’ 같은 영어 문장과 화살표 같은 기호가 결합된 도로 표지판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작품 제목은 ‘예술로 가는 길’.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는 안규철(70·사진) 작가의 개인전 ‘열두 개의 질문’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안 작가는 “예술이 화살표를 따라가면 있을까, 혹은 캔버스 밖에 있을까, 관객의 머릿속에 있을까 묻고 싶었다”며 그렇게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했다.

출품작은 대부분 그림과 텍스트가 섞여 있다. 작품 ‘외국어로 된 12개의 잠언’은 아예 불어, 영어, 중국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된 문장만이 있다. ‘나는 예술이 아니고 예술이 지나가는 길을 봤을 뿐이다’라고 적힌 외국어 문장도 있다. 하지만 그 나라 언어를 읽지 못하는 관람객에게는 그저 이미지로만 다가온다.

안 작가는 2020년 정년퇴직하기까지 20년 이상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요즘 들어 부쩍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내가 글 쓰는 걸 기반으로 미술을 하고 있구나. 글과 미술이 다른 게 아니라 글 쓰는 게 미술 준비 작업이고, 그 안에서 작품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을 ‘글 쓰는 사람이자 미술 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가진 첫 번째 직업은 기자였다. ‘계간미술’ 기자로 7년간 일했고, 1987년 독일로 유학을 간 뒤에도 7년간 통신원으로 일하며 기고했다. 요즘도 매일 아침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사물의 뒷모습’(2021), ‘안규철의 질문들’(2024),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2025) 등의 저서를 냈다.

전시에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회화 작업뿐 아니라 처음 시도한 애니메이션 ‘걷는 사람’(2024), 작가가 직접 퍼포먼스를 펼친 싱글 채널 비디오 ‘쓰러지는 의자 피나에게 바치는 헌정’(2024) 등이 나와 작가의 확장된 면모를 볼 수 있다. 10월 19일까지.

부산=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