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흔쾌히 수락하면서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APEC 계기 3자 정상회담 준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올가을에 열리는 경주 APEC에 초청했고, 가능하다면 김 위원장과 만남도 추진해 보자고 권했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슬기로운 제안”이라면서 이 대통령의 제안을 높이 평가했다고 강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대좌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미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 주셔서 김정은(위원장)과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거기서 저도 골프도 칠 수 있게 해 달라”며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 자리를 권하며 공명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이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할 때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50분간 이어진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약식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김 위원장과 회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나는 그것(김 위원장과 만남)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과의 문답 과정에서는 “김 위원장과 다시 한번 대화하게 되기를 바란다. 올해 그를 만나고 싶다”며 구체적인 추진 시기도 언급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구두 약속한 것을 계기로 김 위원장에게 어떤 형태로든 초청 의사를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아·태 지역 정상이 모이는 다자 외교무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북·미 간 회동을 끌어낸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APEC에서의 남·북·미 3자 회담 성사는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많다. 신변안전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김 위원장의 방남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두 달여 남은 짧은 기간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일각에선 2019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만났던 ‘판문점 남·북·미 회동’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원하는 핵 군축 협상에 나서기가 어렵다. ‘하노이 노딜’을 경험한 김 위원장도 미국의 확답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