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전 기선 제압용 “숙청” 폭탄발언… 면전 공격은 없었다

입력 2025-08-26 18:35 수정 2025-08-26 19:31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식 ‘매복 공격’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2시간30분가량 앞둔 시점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폭탄 발언을 했지만, 정작 회담에서는 “오해인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백악관 웨스트윙 입구에 직접 나와 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취재진을 향해 “훌륭한 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이 대통령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백악관 내부로 안내했다.

트럼프는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열린 회담 모두발언에선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 큰 승리였다. 우리는 당신과 100% 함께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대통령은 새로 꾸민 오벌오피스에 대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 품격이 있어 보이고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 때처럼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가 회담 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도 진위 파악에 애를 먹었다. 미국이 정상회담 취소까지 거론하며 협상 막판 통상·안보 분야 총공세를 벌인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국내에선 정상회담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DC에 파견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소속 주방위군 병력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앞 라파예트공원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일부 병력은 전날부터 총기를 지참하고 순찰 임무에 투입됐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앞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관련 질문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한국 새 정부에 의한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들은 심지어 우리 군사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뒤이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이에 관해 설명해 달라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정보기관으로부터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수색(raid)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오해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교회를 수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 특검의 수사와 관련해 ‘숙청’ 같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회담 직전 기선을 제압해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회담에선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지 않고 곧바로 “오해인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 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위한 미국 국내용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로라 루머나 스티브 배넌 등 마가에서 한국 선거 결과에 대해 계속 불만을 이야기하니 지지층을 위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극우 활동가 루머나 고든 창 등이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동안 트럼프가 이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친위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며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는 특검에 의해서 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특검이) 저의 통제하에 있지는 않지만 지금 검찰(특검)이 하는 일은 팩트체크”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의 설명을 경청했고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이동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