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우려했던 돌발 상황 없이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최대 성과는 외교의 상식을 뒤엎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서 긍정적인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일 것이다. 회담 직전 그가 한국 정치 상황에 비판적인 글을 SNS에 올리며 감돌았던 긴장과 달리, 양국 정상은 덕담과 농담이 오가는 우호적 분위기에서 친밀한 관계를 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권유하고(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때 동행하자는 농담(트럼프 대통령)이 나올 만큼 대화의 한계를 넓힌 것도 양국 정상외교에 좋은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공개된 회담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조선업 협력에 뜻을 같이했고, 이 대통령이 먼저 밝힌 국방비 증액 방침을 미국이 환영했으며,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해 우리가 원했던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를 시작키로 했다. 예상됐던 분담금 증액이나 농축산물 개방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맹 현대화의 난제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별도로 우리 기업이 1500억 달러를 더 투자키로 한 것, 미국 첨단 무기를 구매키로 한 것 정도가 회담에서 내준 부분이다.
잔뜩 긴장했던 것에 비해 밋밋하다 싶은 결과는 오히려 향후 이어질 후속 논의를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발표문도 기자회견도 없었던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매우 가변적인 터라 언제 ‘청구서’가 제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통상에선 반도체 관세 등 미해결 쟁점과 대미 투자의 이행 방안 문제, 안보에선 주한미군의 역할 재설정 및 한·미 동맹의 중국 견제 기능 등이 언제든 대두할 수 있는 미묘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 특히 남·북·미 대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건 회담의 성과인데, 북한 비핵화를 끌어낼 방법론은 언급되지 않아 역시 채워가야 할 과제가 됐다. 큰 틀의 협력·동맹 관계를 다진 이면에 미처 채워지지 않은 ‘디테일’을 어떻게 다뤄가느냐가 이재명정부 실용외교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잇따라 치르며 외교의 첫 난관을 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다. 숨 가쁘게 이어질 후속 협의 전략을 가다듬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곧 펼쳐질 외교의 기회를 십분 활용해 미완의 과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적 요소를 배격한 국익과 실용의 기조를 굳건히 유지해야 외교의 성과가 비로소 손에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