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닫힌 자폐 소년 장애 극복 이야기로 공모전 대상… “빛 찾아 걷는 다른 모습의 사림일 뿐”

입력 2025-08-27 03:00
박주환군이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군 제공

“사람들은 나 같은 중증 무발화 자폐아도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내 행동만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도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 불의한 일을 보면 화가 나고 부당함에 슬퍼진다. 나는 그저 가리워진 길에서 빛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다른 모습의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은 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6일 발표한 ‘제11회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아동·청소년 부문 대상(밀알복지재단 이사장상)을 받은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박주환(15)군의 수필 ‘숫자 2의 기적’ 중 일부다. 2015년부터 장애 관련 진솔한 이야기를 발굴해 온 공모전에는 올해도 다양한 인생의 장면이 담겼다.

'박군에게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지' 묻자 박군이 손글씨로 답한 내용. 박군 제공

자폐 스펙트럼 전문가들은 말을 못 하는 박군과의 소통이 불가능할 거라 단언했지만 어머니는 글쓰기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군이 선 긋기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수없이 눈물을 흘리던 어느 날, 어머니가 ‘1번 사과, 2번 딸기 아이스크림’이라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박군은 마침내 숫자 ‘2’를 써 내려가며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했다. 숫자는 단어가 됐고, 박군이 일곱 살 무렵에는 마침내 “엄마,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게 생겼으니까, 엄마도 하고 싶은 거 좀 하세요”라는 문장으로 피어났다.

박군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상을 받고 싶었지만 대상을 받을 줄 몰랐다”며 “‘오랫동안 꿈을 꾼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지금의 나는 작은 조각을 하나씩 만드는 과정이다. 큰 상을 주셔서 힘이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군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의 최고의 연구대상”이라며 “내가 외로울 틈 없이 세상을 보여주고, 닫혔다고 생각할 때 문을 만들어 준다. 그 문을 열어 보라고 용기를 준다”고 소개했다.

일상 부문 대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은 김현지씨의 ‘내 동생의 쓸모’는 취업난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고민하던 중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동생을 통해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그렸다. 고용 부문 대상(고용노동부 장관상) 박항승씨는 ‘장애가 있는, 그래서 더 가까운 특수교사입니다’에서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고 수많은 거절 끝에 특수교사가 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다양성을 가르치는 값진 경험을 전했다. 일상 부문 최우수상(국민일보 사장상) 이재용씨의 ‘목소리로 걷는 사람’은 다리에 장애가 생긴 아버지가 콜센터 상담사라는 새 직업을 통해 목소리로 세상과 다시 소통하며 재기하는 모습을 담았다.

수상작들은 향후 오디오북과 웹툰 등 장애인식개선 콘텐츠로 제작돼 소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열린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