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병원 한 의사 불륜 폭로 과정서
성적위조·학력세탁 등 사실 드러나
中 당국 “또다른 특혜 없다” 발표에도
누리꾼 “납득 못 해” 철저한 조사 촉구
성적위조·학력세탁 등 사실 드러나
中 당국 “또다른 특혜 없다” 발표에도
누리꾼 “납득 못 해” 철저한 조사 촉구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지난 15일 중국 의료·교육계를 뒤흔들었던 ‘둥시잉 사건’의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꽌시’(신뢰 기반 인적 네트워크)로 포장된 불법 청탁, 성적 위조, 논문 표절, 학력 세탁 등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베이징 중일우호병원, 베이징과기대, 베이징셰허의학원, 베이징셰허병원, 중국의학과학원 종양병원 등 중국 최고의 의료·학술기관 5곳이 위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시정명령을 받았다. 관련자 19명에게는 면직·해임·당적정지·경고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베이징 중일우호병원 흉부외과 부주임 의사였던 샤오페이(39)의 불륜을 다른 병원 안과 의사인 그의 아내가 폭로한 것이었다. 샤오페이 부부는 모두 베이징대 의학원 출신의 엘리트다.
샤오페이는 2019년 같은 병원 수간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적발돼 반성문을 제출하고도 대담하게 불륜을 이어갔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간호사, 인사처 직원, 레지던트 등 4명과 불륜 관계임을 입증하는 사진과 호텔 숙박 기록 등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중 1명은 2차례 임신해 중절 수술을 받았고 레지던트 둥시잉(29)은 임신한 상태였다. 샤오페이와 둥시잉은 아이를 출산할 계획을 세우고 함께 지낼 아파트까지 구했다. 샤오페이의 아내는 남편이 지난해 7월 흉강경 수술 도중 수석간호사와 말다툼하는 둥시잉을 감싸기 위해 마취 상태의 환자를 40분간 버려두고 수술실을 떠난 사실도 폭로했다.
누리꾼들은 의료 윤리를 저버리고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린 행동에 분노했다. 관련 의혹들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둥시잉의 특이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둥시잉은 해외 최고 수준의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가 4년만 교육받으면 의사가 될 수 있는 베이징셰허의학원의 ‘4+4 시범반’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로 유학 간 뒤 뉴욕 바너드칼리지 경제학과로 편입해 졸업한 둥시잉은 입학 자격이 아예 없었다.
누리꾼들의 제보가 쏟아졌다. 둥시잉이 ‘4+4 시범반’에 입학하면서 제출한 베이징과기대 수강 성적표는 위조된 것이었다. 박사학위 논문도 20% 이상 표절이었다. 베이징과기대 국제처 부처장이던 둥시잉의 고모가 교무처 직원과 공모해 성적표를 위조해주고 같은 팀 교수에게 지시해 표절을 돕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 심사 과정도 엉터리였다. 논문 주제는 영상의학이었는데 정형외과 교수가 지도 교수를 맡았다. 그는 절차를 어기고 논문 주제를 변경해줬고 다른 지도 교수는 규정상 금지된 심사위원을 겸직했다. 중국의학과학원 종양병원은 둥시잉이 제출한 논문 2편을 중복 게재해주고, 단순 번역으로 참여한 논문 3편에 대해 공동 제1저자로 인정해줬다. 베이징셰허병원이 동시잉이 실습생일 때 수술에 불법 참여시킨 사실도 밝혀졌다. 의학원에선 내과를 전공했는데 흉부외과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게 된 과정도 미심쩍었다.
누리꾼들은 통상 10~12년 걸리는 의사 교육 과정을 4년 만에 마친 데다 각종 특혜와 편의를 누린 배경에 막강한 뒷배가 있는 것으로 의심했다. 조사 결과 둥시잉의 아버지 둥샤오후이는 공산당 고위 간부이자 국유기업 사장이었고, 어머니 미전리는 베이징과기대 교수로 산하 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었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5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일우호병원은 의료 윤리와 가족 윤리를 저버린 샤오페이를 해고하고 공산당에서 제명했다. 베이징시 위생건강위원회는 그의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최소 5년간 의료·보건 활동을 금지했다. 둥시잉에 대해선 셰허의학원 ‘4+4 시범반’ 입학, 박사학위, 의사 면허를 모두 취소했다.
이번 2차 조사 결과에선 둥시잉의 성적표 위조, 논문 표절 및 부실 심사 등에 누가 어떻게 관여했는지가 새로 규명됐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특권층 자녀들의 특혜 입학 의혹이 제기된 ‘4+4 시범반’에 대해서도 다른 학생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만 해명했다.
누리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더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둥시잉이 특혜를 받는 과정에 그의 부모가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불공정 소지가 큰 ‘4+4 시범반’은 아예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에 만연한 특권층의 불법 꽌시 관행도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꽌시로 여기 올 수 있었다”고 말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자신도 그렇다고 대꾸하는 그림이 여러 형태로 변형돼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다. 그중 수술실에 있던 바이러스가 “나만 내 힘으로 여기 온 것인가”라고 말하는 그림과 수술실 의료기구와 장비들도 “꽌시를 통해 여기 왔다”고 말하는 그림은 쓴웃음을 자아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최고 병원의 신뢰성, 의료·교육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최고의 교육기관과 병원에 심각한 학문적 부패와 족벌주의가 만연하다면 전국의 일반 병원에선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누리꾼의 반응을 전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