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휴가와 검역

입력 2025-08-27 00:34

검역 차별 두는 관찰대상국
가난한 나라뿐이라 거슬려
관점마다 다른 것이 세상인데

아내와 해외로 휴가를 다녀오면 늘 생경한 순간을 목도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마치면 유리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유리를 통과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누군가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김○○씨?”

아내와 나는 막 입국 심사를 마쳤을 뿐이다. 짐도 찾지 않았고, 세관도 통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반인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구역에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아내를 찾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혹시 나 몰래 검은 세계와 거래하다가 당국의 수사망에 포착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보면 늘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듯한 인상의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신다. 그리고 한결같이 멋쩍게 웃고 있다. 그러면 아내는 ‘아. 또 왔군’ 하는 표정으로 순순히 그 여성을 따라간다. “나, 잠깐 갔다 올게” 하고. 아내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자신이 수의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해외에만 다녀오면 방역 당국에서 귀신같이 알고 사람을 보내 입국심사대 앞에서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외에서 병균이 있는 동물을 접촉해 국내에 전염병을 퍼트리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저는 농장 수의사가 아니고, 개와 고양이만 치료해요”라고 항변하지만 절대 통하지 않는다. 입국하고 나흘쯤 지나면 “혹시 농장에 가시진 않았죠?”라며 의심하는 어조의 전화도 받는다. 이 모든 게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 역학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대체 검역실에 가서 뭘 한단 말인가. 너무 궁금해 이번 여름휴가를 마치고 입국할 때는 따라가 봤다.

검역원은 몹시 근엄한 표정으로 “저쪽에 서세요”라고 가리켰고, 아내는 또 익숙하다는 듯 지시한 쪽에 가서 양팔을 랍스터 앞다리 모양으로 들었다. 그러더니 아내가 선 곳의 사방에서 흰 기체 소독약이 분무됐다.

이윽고 고대한 질문 차례. “어디 갔다 왔어요?” “인도네시아요.” “네. 가보세요.”

끝이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물론 검역관은 인도네시아라는 말을 듣자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라고 했다. 결국 소독약 한 번 뿌리고, 어디 갔는지 물어보는 게 전부다. 그 소독약이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지켜줄 신비의 명약과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내는 독일이나 일본을 다녀오면 아무도 자신을 ‘마중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국가들은 이른바 ‘청정국’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는 관찰 대상 지역이라 했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동물들의 신체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해로운 병원체의 확산을 막는 게 취지라면 정신적 건강 또한 예방해야 않겠는가.

만약 그런 상상을 하는 골치 아픈 세상이 도래한다면 소설가가 입국할 때마다 “최민석씨?” 하며 어딘가로 끌려갈 수도 있다.

“이번에는 어느 나라에서 이야기를 채집해 왔나요?” “크로아티아입니다.” “아니, 거긴 구 공산권 아니요. 심화 인터뷰를 해야 하니 진실의 방으로 갑시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아니면, 진부한 이야기가 퍼져 온 국민이 창의성을 잃을까봐, 일종의 ‘재미없는 이야기 검열’을 할지도 모른다. “뭐라고요? 독일에서 취재하고 왔다고요? 거긴 ‘심각 등급 국가’입니다!”라며 갑자기 ‘삐이이! 삐삐!’ 하며 경고음과 함께 붉은 경광등이 무섭게 깜빡일지도.

‘설마, 컴컴한 겨울의 오후 3시부터 맥주만 마셔댄 이야기를 쓸 건 아니죠?’라고 추궁하면서….

그나저나 이렇게 된다면 동물 검역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인도는 실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나라니까. 러시아도 그렇고.

이렇게 보면 세상의 꽤 많은 것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왜 했느냐고요? 너무 더워서, 한숨 돌리시라고요. 헤헤.

최민석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