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을 이용하지 않는 미술 작가들이 있을까. SNS 가운데 글보다 사진 위주인 인스타는 시각 언어로 작업하는 미술인에게 최적화된 툴이다. 일찌감치 2017년 무렵 미술 작가들 사이에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로 대규모 엑소더스가 있었다. 인스타 주 연령대인 20∼50대뿐 아니라 60∼80대 원로까지 인스타를 하는 세상이다. 팔로워 수 8만2000명의 이상원(47), 5만1000명의 노상호(39), 2만7000명의 하태임(52) 등 중견 작가들뿐 아니라 5만명의 하종현(90), 2만2000명의 이건용(83) 등 원로 작가들도 인스타 인플루언서 대열에 합류했다. 밤새 작업한 따끈따끈한 작품을 오프라인 전시에 앞서 인스타에 먼저 올리는 시대. 인스타는 화랑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을까. 인스타가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팔로워 수가 많은 인스타 작가들을 대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 포트폴리오와 홍보 역할… 일상 공유까지
하태임 작가는 밝고 경쾌한 원색의 리본 그림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갤러리 전시를 통해서만 작가로 등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인스타를 통해 작가로 어필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인스타가 작가로서 존재감을 알리고 인지도를 올리고 전시를 홍보하는 수단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 역시 인스타에 개인전 소식 등을 올리는데, 이것이 쌓여 일종의 포트폴리오 역할을 하더라. 해외 갤러리 관계자에게 작품 세계를 알릴 때 유용하다.”
작가들은 인스타에 작품 사진을 올릴 때 상당히 공을 들인다. 이상원 작가는 마른 물감 조각들을 이용해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사람 이미지를 만들어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찾아간 이 작가의 작업실에는 촬영 조명 장치가 있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 글을 올리고 편집해야 대중이 좋아하는지 감이 잡힌다. 스토리를 만들어 올리는 작품, 그렇지 않은 작품에 대중의 반응이 다르다”고 했다.
1세대 실험 미술 대가인 원로 이건용 작가의 경우 딸 이기쁨씨가 인스타 계정을 관리한다. 이씨는 “전시 소식뿐 아니라 소소한 근황도 알린다”면서 “식당 등에서 ‘인스타를 통해 소식을 잘 접하고 있다’고 인사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인스타는 대중에게 작가를 알리는 창구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인스타를 통해 미술 작가의 팬덤이 형성되는 시대가 열린 거다.
# 인스타는 상설 전시… 갤러리는 팝업 전시
아라리오갤러리 전속인 노상호 작가는 인스타에서 채집한 이미지를 가져와 편집하고 각색해서 회화 작업을 한다. 인스타는 그에게 작품 소재를 낚는 저수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SNS를 하는 MZ세대에게 더 사랑받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대중 음악계에서 친숙한 인물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그는 대학 후배인 인디 밴드 혁오의 앨범 재킷 디자인 작업을 도와줬다. 혁오가 뜨면서 미술 작가 노상호 역시 음악팬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노 작가가 지난해 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 ‘홀리’는 SNS 스타의 전시 문법을 잘 보여준다. 전시장은 MZ 관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작품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바이러스가 퍼지듯 입소문이 나는 바이럴 마케팅의 전형을 보여줬다. 대부분 그의 작업을 인스타에서 먼저 봤을 테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노 작가는 “제게 인스타는 상설 전시장이고, 갤러리 전시는 일종의 팝업 전시장”이라고 했다. 그에게 인스타는 ‘작가 노상호’를 알리는 수단을 넘어 매일 전시를 여는 마당, 즉 ‘디지털 화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갤러리, 아트페어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견했다면 이제 오프라인 전시는 온라인에서 발견한 작품의 실물을 보러 가는 장소가 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인스타를 통한 전시 홍보 효과는 확실하다. 예전에는 전시를 하게 되면 미술 전문지에 전시 소식을 알렸다. 이제는 개인 인스타 계정에 올리는 것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다. 이상원 작가는 인스타에서 팬덤이 형성되면서 전시장소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하남이든 상관이 없었다. 매번 오픈 런이 있었고, 전시 때마다 1억∼1억5000만원가량의 판매고를 올렸다. 작품 가격은 20호에 600만원, 30호는 900만원, 50호는 1500만원, 100호 3000만원이다.
# 인스타 통한 ‘직구’시대 활짝, 하지만…
화랑의 핵심 역할은 전시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인스타를 통해서도 작품 매매가 일어난다. 과거 전속 화랑이 없는 신진 작가의 경우 컬렉터들이 작가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화랑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구매한 것이다. 통상 화랑에서 작품을 판매할 경우 작가와 화랑이 판매 금액을 5대 5로 나눈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인스타를 하기 때문에 인스타 계정 DM을 통해 고객들이 작품 구매 의사를 전하는 일이 흔해졌다.
노 작가 역시 2021년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기 전에는 인스타 DM을 통해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제는 전속 화랑이 생겼으니 DM을 통해 구매 문의가 오면 바로 갤러리 측에 넘긴다.
사실 전속의 유무와 상관없이 작가들은 직접 고객 상대하는 걸 꺼린다. 이상원 작가도 전속 화랑이 없지만 그런 구매 문의가 오면 판매를 대행하는 딜러에게 넘긴다고 했다. 컬렉터를 상대하는 일이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면서 엄청난 감정 노동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신진 작가의 경우 작품을 산 컬렉터가 인스타에 올린 다른 작품을 보고는 “새로 올린 작품이 더 좋으니 바꿔달라”고 떼쓰는 통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컬렉터를 직접 상대하면 그만큼 작업 시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컬렉터 취향에 작업 스타일이 좌우될 ‘위험’도 있다는 점도 직접 상대를 꺼리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인스타는 어느 정도까지 화랑을 대체할까. “지금 구조에서는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작가의 ‘팬덤’이 가서 산다. 갤러리가 어디 위치하든, 큰 갤러리이든 작은 갤러리이든 상관없다. 매매 플랫폼으로서의 갤러리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작아졌다.”
이상원 작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갤러리가 가진 힘은 이들이 보유한 컬렉터와 자금 동원력이다. 메이저 큰 손 컬렉터를 보유하고 있고 작품 구매 단가가 크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형의 경우 상황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랑은 그저 작품 매매 주선만 하는 곳이 아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독려하고, 파워 있는 컬렉터, 주요 미술관 전시로 작가를 연계해줌으로써 작가의 가능성을 키워준다. 인스타 팔로워 수가 기획사 같은 화랑의 기능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타 팔로워 수가 상징하듯 미술시장에서 대중의 힘은 커질 전망이다. 노 작가의 진단이 명쾌했다. “미술사에 남을 작가만 시장에서 득세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시장에서 대중의 반응이 크면 화랑도 거부하기 힘든 측면이 있을 것이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