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대접이나 해 줬는가.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의 풍토 아니냐.”
2006년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최우수선수에 뽑힌 한국계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가 그해 4월 아들과 함께 방한했다. 공항에 모여든 기자들은 영웅의 어머니에게 감동의 일성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따끔한 일침을 들었다. 한국 사회는 순혈주의가 강하지만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두드러진다. 평소엔 ‘피가 섞였다’며 혼혈인을 차별하다 성공할 경우 ‘우리 피가 있다’며 환영하는 식이다.
이웃 일본은 상황이 좀 다르다. 특히 오롯이 실력으로 승부하는 스포츠계에서 혼혈 선수들을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축구 대표팀 내 주전 1~2명은 혼혈이었다. 4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은 아이티 출신 아버지를 둔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성화 최종 점화자로,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는 흑인 혼혈 하치무라 루이를 대표팀 기수로 내세웠다. 지난 7월 축구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은 저메인 료, 미국프로야구(MLB) 스타인 국대 투수 다르빗슈 유도 혼혈 출신이다.
한국은 남자축구의 경우 혼혈 대표선수가 장대일(1998년), 강수일(2015년) 둘뿐이었다. 여자축구(케이시 유진 페어)와 야구(토미 에드먼)에서도 2023년에야 최초 혼혈 선수가 발탁됐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270만명에 이르고 다문화 혼인 비중이 10%를 웃도는 현실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25일 독일계 옌스 카스트로프가 홍명보호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이 아닌 외국 태생의 첫 혼혈 국대 축구선수가 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뛸 정도로 실력이 있어 후보군이었던 기존 혼혈 선수와 위상도 다르다. 심리 생물학자 앨런 지브는 저서 ‘혼혈 파워’에서 혼혈의 유전적 이점으로 좌우 균형미를 통한 강한 활력과 성취감을 꼽았다. 카스트로프가 1년 남은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줘 사회 각 분야에 혼혈 파워가 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