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살다 살다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다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야기는 원로 목사회 전현직 회장 목사님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현직 회장 목사님이 전임 회장 목사님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목사회에서 제명해 버렸던 것이다. 그간 전현직 회장 목사님 간에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이 여러 건 제기됐다. 제명결의 취소 소송만도 이번이 두 번째다. 한 번 조정을 했었는데도 잘 해결이 안 됐다.
그런 만큼 조정을 진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아 미리 조정실에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시원한 물도 한 잔씩 준비해 놓았다.
시간이 돼 조정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근엄한 원로 목사님들이 앉아 계셨다. 법원 조정이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이 목사님들인 만큼 기도로 조정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니, 목사님들께서 시작과 마무리 기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시작 기도를 해 주시면 좋을까요?”
그러자 소송을 제기한 전임 회장 목사님이 선뜻 상대방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좋겠다고 총대를 넘긴다. 그러자 현직 회장 목사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 죄인인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참으로 저희가 여기 법원까지 오게 돼 부끄럽습니다. 오늘 지혜롭게 조정이 잘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로 시작해서 그런지 조정 자리가 은혜가 넘치는 것 같다. 다행히 원로 목사회 회장님도 그동안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번에 조정 자리에 나온 목사님은 원고인 전임 회장 목사님의 복권에 우호적이다. 다만 회원들을 설득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니 원고 목사님이 금전적인 청구는 포기해 주는 게 좋겠다고 한다.
원고 목사님도 자신은 돈이 아니라 명예 때문에 이렇게 소송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화답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고통을 생각하면 상징적으로라도 위로금은 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목사님들은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지만 의견 차이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이제 내가 좀 나서야 될 것 같아 슬쩍 끼어들었다.
“그럼 전임 회장 목사님께서 받으셔야 될 돈을 원로 목사회에 헌금하시는 것으로 하시면 어떨까요? 그냥 포기하시면 너무 섭섭하고, 그만큼을 헌금하시기로 하면 명분도 서고 명예도 회복되니까요.”
그러자 원고 목사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금 섭섭해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금전 청구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원로 목사회가 복권 결의를 추진하는 것을 수용했다.
“제가 수년간 조정을 진행하면서 이렇게 은혜로운 조정은 또 처음입니다. 서로 멱살 잡고 싸우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도 있는데, 역시 목사님들이라 다르시네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마무리 기도를 해 주시지요.”
원고 목사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죄인인 우리를 용서해 주소서. 조정위원님을 축복하셔서 지혜롭게 일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가 이제 다시는 조정위원님과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목사님, 축복기도도 해주시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는 안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또 처음 들어봤습니다. 하하.”
아무튼, 이제 원만히 합의돼 우리가 법원에서 다시 볼 일이 없는 것이 은혜 위에 은혜로다. 아멘.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