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중심과 테두리

입력 2025-08-27 00:32

살아간다는 건 무대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서는 일 같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터로 향하고, 고민하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감동하는 모든 사건과 감정의 흐름은 언제나 나를 기점으로 전개된다.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겪더라도 기억이나 소회가 제각각인 건 각자가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관점에 따라 판단하며,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세상의 중심에는 분명히 내가 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다른 풍경이 있다. 사회에서 나는 수많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고, 거리에서 스쳐 가는 행인에겐 가로수와 같은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지인의 인생에서는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연이며, 어떤 이의 과거에선 오래전에 잊힌 에피소드다. 흥미로운 건 어떤 사람이든 자기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동시에 누군가의 테두리에 머문다는 점이다.

이렇게 상대성과 동시성이 혼재하는 삶은 때로 가벼운 호기심과 잔잔한 재미를, 어떤 날엔 물리칠 수 없는 고독을 안겼다. 틀을 깨는 새로운 해석에 사고의 폭을 넓히고 열띤 토론을 벌여 서로의 입장을 알아가는 기쁜 순간이 있는 반면에,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는 호응에 닫히는 마음을 봤고 일생일대의 사건이 사소하게 흘려지는 장면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감각의 차이에 한동안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는데,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힘은 겸허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든 이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누군가의 삶에 조연에 머무른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과 조연, 중심과 주변의 구분은 절대적인 서열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 존재하게 만드는 상호적인 관계다. 인생이란 중심과 테두리를 오가는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 말이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