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찾은 서울 중구 충무로의 환전소. 영어로 된 환전 간판을 내걸었지만 해당 매장 곳곳에 ‘테더코인’ ‘OTC(장외거래)’ ‘코인 거래’ 표지가 더 눈에 띄었다. 해당 환전소 홈페이지는 최저 수수료로 대면 코인 거래를 한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인근의 한 환전소 관계자는 “코인 거래 수수료 등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환전소들도 있다”며 “최근 환전소에 룸을 두는 등 더 숨어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명동 등 도심 곳곳에 코인을 매매·알선·중개하는 사설 환전소가 성행하고 있지만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수 업체가 온·오프라인에서 영업 중이지만 정식으로 신고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관리·감독 공백 속에 불법 코인 환전소들이 자금세탁 등 범죄의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관세청이 지난 6월 국내 환전소 1409곳 중 고위험 환전소 127곳을 대상으로 단속한 결과 61곳에서 거래내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등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지하경제 성격이 짙은 사설 환전소의 특성상 정확한 거래 규모 추정은 어렵지만 해외 무역대금 불법세탁으로 적발된 사례를 보면 최대 수천억원대 거래가 이뤄진다.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달러 밀반출을 위한 자금세탁 창구 역할을 하거나 코인 업자들과 결탁해 거래량을 부풀리는 식으로 뻥튀기 작업을 돕는 사례도 많다”며 “사설 환전소 업체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자산을 사고팔며 자금 추적을 어렵게끔 한다”고 말했다. 현행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단속망도 촘촘하지 않다. 자금세탁방지법은 불법 자금이 드러났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 관세청은 해외 송금 등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항이 연루된 경우 처분할 수 있지만 외환에 포함되지 않는 가상자산 매매 행위에 대한 단속 권한은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설 환전소 대부분은 오프라인 상 이름을 내걸지 않고 음지에서 활동한다”며 “미신고 업체를 인지하면 수사기관에 통보하겠지만 현장에 난립하는 환전소까지 직접 조치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업자들이 서버를 해외에 두거나 영어로만 사이트를 운영하면 국내 영업행위 입증이 어렵다”며 “여러 명이 분산 송금하는 경우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등 수사 과정에서 불법 환전소가 드러나는 경우 외에는 적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영미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다른 업종을 겉으로 내세우는 등의 범행 유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외환의 유형으로 정의하는 등 ‘회색지대’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관리 대상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희 임송수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