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무렵, 경기도 의정부의 작은 식당 안이 김치찌개 냄새로 가득 찼다.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뿐이고, 값은 3000원이다. 밥은 무제한 제공한다. 주문을 받은 청년이 메모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단어 사이에 작은 숨을 두며 “한 그릇… 맞으시죠”라고 묻는다. 쟁반은 늘 두 손으로 들고 테이블에 그릇을 놓을 때도 잠시 멈춘 뒤 물컵까지 가지런히 내려놓는다.
이곳은 청소년 전문기관 십대지기(대표 박현동 목사)가 최근 문 연 ‘따뜻한밥상’(따밥) 22호점이다. 따밥 운동은 2020년 서울 연신내 1호점에서 시작됐다. ‘누구나 부담 없이 한 끼’를 내세운 김치찌개 3000원이 상징이 됐고 이후 전국 20여곳으로 퍼졌다. 의정부 십대지기점은 그중에서도 자립준비청년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첫 사례다.
십대지기는 지난 25년간 경기도 북부에서 청소년을 돌봐왔다. 박현동(59) 목사는 “의정부 양주 동두천 등은 수도권이지만 문화나 교육에서는 늘 뒤처져 있었다”며 “적지 않은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 밖으로 밀려나고 청소년 범죄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십대지기는 2003년 의정부시청소년쉼터를 수탁한 것을 계기로 교회 안 청소년이 아니라 거리의 위기 청소년을 본격적으로 품기 시작했다. 공동생활가정과 쉼터, 그룹홈에는 20여년 동안 1만명 넘는 청소년이 오갔다.
하지만 만 24세가 지나면 제도권 지원은 끊긴다. 박 목사는 “쉼터에서 나가자마자 너무 빨리 무너지는 아이들을 수없이 봤다”며 “누군가는 이들을 사회로 이끌어내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따밥’ 실험은 바로 그 연장선이다.
의정부점은 따밥의 상징인 ‘김치찌개 3000원’을 그대로 따른다. 값은 저렴하지만 손님 응대, 서빙, 조리, 계산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종합적인 훈련장이 된다. 박 목사는 “단순 판매가 아닌 전 과정을 배우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홀 매니저로 일하는 자립준비청년 서상현(28)씨는 주문을 받을 때마다 ‘빨리빨리’ 대신 한 박자 더 숨을 고른다. 그 잠깐의 숨 고르기가 서씨에겐 사회와 마주 서는 연습이 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영수증 뒷면에 ‘눈 맞추기’ ‘주문 확인 한 번 더’ ‘불편한 거 있으면 꼭 말씀해달라고 인사’라고 손글씨 메모를 적어뒀다. 그는 “처음엔 주문을 잘못 받아 당황했지만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3000원이 맞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당당히 대접할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의정부 따밥은 추석 전까지 청년 한 명을 더 투입하고 연내 3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자립 모델이 아니다. 하루 매출 15만~20만원은 월세와 인건비, 공과금을 충당하는 수준에 그친다. 박 목사는 “그러나 남는 것은 장부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라 청년이 쌓는 하루 치 경험일 것”이라며 웃었다.
이곳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박 목사의 이른바 ‘생일 모금’ 덕분이었다. 그는 2023년부터 자신의 생일이 있는 6월마다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에게 밥 한 끼 사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대신 만원만 보내주세요.” 그렇게 받은 후원금은 첫해 1000여만원, 이듬해 다시 1500만원으로 이어졌다. 2년 동안 총 427명이 참여했고 2500만원이 모였다. 이 돈으로 보증금 1000만원을 내고 실내 장식과 주방 집기를 갖췄다. 남은 후원금 500만원은 현재 따밥 운영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식당 한쪽에는 마음을 보탠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박 목사는 “하나님이 꼭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십대지기와 따밥을 통한 후원자를 모아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운영 방식은 ‘상생’을 지향한다. 식당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만 문을 연다.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은 주변 상인들과의 약속 때문이다. 전단을 돌리거나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원칙이다. 박 목사는 “찾아오는 손님을 환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지역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정부=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