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게임쇼에서 한국 게임사들의 진득한 도전은 올해도 이어졌다. 미국·일본·중국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체급 차이를 실감했지만, 멈추지 않는 도전 의지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지난 20일부터 닷새간 독일 쾰른에서 열린 ‘게임스컴 2025’에서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도전적인 신작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엔 36만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현장을 찾았다.
게임스컴은 PC·콘솔 중심의 트렌드에 민감한 전시회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완성도가 부족하면 곧바로 혹평이 따른다. 그럼에도 한국 게임사들은 마음을 다잡고 ‘현대전’에 뛰어들었다. 이번 행사에 출품작 다수가 도전적인 장르에 속한 점은 특히 눈길을 끈다.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B2C관에 대형 부스를 마련해 까다로운 유럽 게이머들을 맞았다. ‘배틀그라운드’ 시리즈로 성공 신화를 쓴 크래프톤은 올해도 대규모 시연 공간과 무대 이벤트를 준비해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또 글로벌 미디어 쇼케이스를 열어 서구권 미디어를 겨냥한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생활 시뮬레이션 ‘인조이’는 ‘심즈’ 수요를 겨냥해 푸른 눈의 게이머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에 전술성을 특화한 3인칭 슈팅 ‘블라인드 스팟’ 역시 화제를 모았다.
펄어비스는 수년간 공들인 ‘붉은사막’ 최신 시연 버전을 공개했다. 155대 규모의 시연석을 마련했음에도 대기 시간이 최대 2시간 30분에 이를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조작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직접 확인하려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붉은사막’은 이번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최고의 비주얼’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엔씨소프트는 미디어와 사업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관계 구축에 집중했다. 진정희 엔씨아메리카 대표는 B2B관에 쇼케이스 공간을 마련하고 빽빽한 미팅 일정을 소화했다. 엔씨는 고품질 그래픽으로 무장한 슈팅 게임 ‘신더시티’와 일본 시장을 겨냥해 개발 중인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를 홍보하며 사업 확장을 모색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차기 기대작 ‘갓 세이브 버밍엄’을 이번 행사에 출품했다. 한상우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직접 현장을 찾아 게임을 소개하며 공을 들였다.
이번 게임스컴에서 한국 게임에 대한 주목도는 이전보다 확연히 높아졌지만, 동시에 격차도 실감했다. 중국 게임사들은 특유의 낮은 인건비와 높은 노동 집약력을 앞세워 AAA급 대작을 ‘찍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의 대미를 장식한 ‘검은 신화: 종규’는 화려한 트레일러와 뛰어난 캐릭터 묘사로 관객을 압도했다. 본 행사에서도 텐센트, 넷이즈, 호요버스 등 유명 중국 게임사들이 대형 부스를 차려 게이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호요버스 부스는 ‘원신’과 ‘붕괴’ 시리즈 체험 이벤트에 인파가 몰리며 한때 이동 동선이 마비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의 존재감도 여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7’, ‘아우터 월드’, ‘닌자 가이덴’ 등 신작을 공개했고,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신규 확장팩 ‘한밤’으로 RPG 팬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닌텐도는 차세대 콘솔 ‘스위치2’와 대규모 신작 라인업을 선보였고, 캡콤은 ‘레지던트 이블: 레퀴엠’으로 게임스컴 어워드 4관왕에 오르며 올해 최고의 게임을 배출했다. 코나미도 ‘메탈 기어 솔리드’와 ‘사일런트 힐’ 신작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냉정히 말해 글로벌 게임사와 한국의 격차를 확인한 자리였다”면서 “수십 년 노하우를 가진 일본·미국, 값싼 인건비와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에 비해 한국이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게임이 아예 명함조차 못 내밀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한국 게임사들은 계속 도전적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매출 효율이 낮더라도 부딪혀 보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쾰른=글·사진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