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정책을 둘러싸고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정적 순간에 한발 물러섰다는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현상이 금융시장의 중요한 이슈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타코 현상은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회복은 물론 큰 폭의 상승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주요국과 관세협상 마무리로 타코 현상이 사라지면서 금융시장은 파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타코에 빗대어 파코(PACO·Powell Always Chickens Out)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중요한 순간에 물러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코 현상이 현실화됐다. 9월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던 파월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던 잭슨홀 미팅(미국의 경제·통화 정책 분야 고위 당국자 회동) 연설에서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단기 현상에 그칠 수 있는 반면 고용시장의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밝히면서 9월 금리 인하에 힘을 더해준 것이다.
금리 인하에 신중한 매파적 입장을 견지하던 파월의 변신에는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트럼프의 압박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파월의 정책 성향과도 무관치 않다. 파월은 미국 경기 침체 리스크와 코로나19, 그리고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맞서 공격적인 금리정책과 유동성 정책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방어해 왔다. 따라서 최근 고용시장 불안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파월의 정책적 의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파코의 현실화로 미국 주식시장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 랠리 이후 숨고르기 국면에 진입해 있던 상황에서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재개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추가 유동성 공급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증시와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AI 사이클의 거품론이 제기되던 때 파월의 금리 인하 시그널, 즉 파코 현상은 AI 사이클의 거품론 우려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파코 현상은 국내 금리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을 앞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과 가계대출 리스크로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달리 미약한 국내 성장 추세를 고려할 때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 연준이 잠재한 관세발 물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 불안, 즉 경기 방어 차원에서 보험성 금리 인하를 단행할 공산이 커진다면 금통위의 고민도 커질 것이다.
금통위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알 수 없지만 국내 경제와 증시 입장에서 파월의 변신과 같은 파코가 필요해 보인다. 즉 유연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동산시장으로 대변되는 금융 안정에만 너무 얽매일 경우 경기부양 시점을 놓칠 수 있다. 소비쿠폰 등 추경 효과로 경기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할 금리 인하 등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정부정책도 신중함보다 파코처럼 유연함이 필요해 보인다. 신정부 출범 이후 급등하던 국내 증시는 조정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주변 일본 증시는 물론 각종 경기 리스크에 직면한 중국 본토 증시마저 10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이러한 국내 증시의 조정에는 급등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만 자본시장 육성 목소리와 달리 정책 일관성에 대한 불신과 정책 결정 지연도 한몫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파월의 파코와 같은 정책 유연성이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박상현 iM증권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