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경제성장 전략에서 기업 정책과 관련해 상반된 메시지를 담아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혁신 경제’를 앞세운 중장기 성장 청사진을 강조했지만 그만큼 기업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격이란 평가가 나온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피지컬 AI 1등 국가’를 목표로 기업 부문에서 7대 과제를 추진한다. 제조업 7대 분야(로봇·자동차·선박·가전·드론·팩토리·반도체)에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분야마다 핵심 사업 달성까지 최장 7년이 필요한 중장기적 과제다. 정부는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산업 3대 강국 진입, 완전 자율운항 선박 개발,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탑재 제품 출시, 글로벌 AI 가전 시장점유율 1위, 제조기업 AI 도입률 40% 달성 등의 과제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2027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고, 2031년까지 완전 자율비행드론을 개발·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러한 전환을 실시하는 기업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성장펀드 100조원을 조성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고, 관련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는 등 절차적 비용도 줄인다. 미래 성장 동력을 신속하게 끌어올려야 3%대 잠재성장률 반등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기업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정책도 다수 담겼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 의무·책임을 강화했고, 산업 현장에서 다수·반복 사망 사고를 낸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였다.
성장을 독려하면서 규제도 강화해 기업으로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면 정책 방향을 잃어 자칫 제자리에서 헛돌 수 있다”며 “당장 기업이 고용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내수에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를 가볍게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건설업 불황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관련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 건설투자가 2.7% 증가해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2일 올해 건설투자증가율을 -8.1%로 낮춰 잡았다.
재원 마련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불투명하다. 국정기획위원회는 5개년 국정운영 계획에서 AI·에너지 분야에 약 5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과 세입 확충, 기금 여유 재원 등을 활용한다는 구상이지만 여전히 현실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첨단전략산업기금과 민간 자금을 50조원씩 모아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 역시 운용 구조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책 펀드에서 중요한 건 수익구조”라며 “손해가 나면 정부 펀드가 뒤집어쓰는 경향이 반복되지 않도록 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