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코 쓰요시 지요코 부디 사이좋게 힘내서 엄마를 도와주거라.” 자식들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수첩 유언’은 사고 발생 5일 후 망자의 윗옷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1985년 8월 12일 일본 군마현 오스타카 능선에 추락한 일본항공(JAL) 123편에 탑승했던 가와구치 히로츠구는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219자를 남겼다. 글씨는 흔들렸지만 꾹꾹 눌러 썼는지 뒤 페이지에도 흔적이 또렷이 남았다.
지난 12일로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40년이 됐다.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탑승객 524명 중 520명이 사망했다. 사고기가 대형기인 보잉 747이고 사고 시점이 한국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을 앞두고 있어 피해가 컸다. 사고 후 늦어진 구조작업에 대한 비판, 유족을 배려하지 않은 당국에 대한 성토, 사고 원인을 둘러싼 온갖 추측 등이 어지럽게 얽혔다.
이후 조사에서 보잉이 꼬리 날개 부위를 규정대로 수리하지 않았고, 항공사가 이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제조사와 항공사 잘못이 뒤섞인 만큼 상대의 책임을 강하게 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항공 내에선 보잉에 우선 책임이 있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반면 유족들과 일본 내에선 항공사 책임을 더 무겁게 물었다. 여러 논란을 거친 뒤 일본항공은 참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은 입사 1년, 10년, 간부 승진 때마다 사고 현장을 찾아 안전 연수를 받는다. 매년 봄 등산로가 열리면 전국에서 모여든 일본항공그룹 직원들은 거의 매일 ‘위령등산(慰靈登山)’을 진행한다. 2005년 사고 기체 일부도 도쿄 연수시설로 가져와 전시했다. 사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사고 관계자의 말을 듣는 것을 안전교육의 핵심으로 삼은 결과다.
그 덕분인지 일본항공은 40년간 크고 작은 사고에도 사망사고는 없다. 지난해 신정 연휴인 1월 2일 발생한 항공기 충돌 사고는 그간 일본항공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379명을 태운 일본항공 516편은 도쿄 하네다공항에 착륙하면서 활주로에 잘못 진입한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했다. 해상보안청 항공기 탑승자 5명이 사망하고, 여객기에 화재가 발생해 기체 대부분이 전소됐지만 379명은 불이 번지기 전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기내 방송 시스템이 망가진 상황에서 메가폰을 들고 승객들을 서둘러 대피시킨 승무원들과 기내 확인 후 마지막에 탈출한 기장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외신들은 기적의 탈출이 1985년 사고와 무관치 않다고 봤다. CNN 기사 제목은 ‘피로 쓰인 안전 수칙이 도쿄 항공기 충돌에서 많은 목숨을 구했다’였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는 사고 발생 후 채 1년도 안 지났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다. 사고 원인을 둘러싼 유족과 당국 간 갈등도 표면화됐다. 지난 6월 항공사고철도조사위원회의 엔진 정밀조사 중간결과 발표를 놓고 유족들이 “조종사 실수만 부각한 결론”이라며 반발해 조사 결과 발표 자체가 중단되기도 했다.
일본항공 사고 유족 등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는 참사 유족들은 사고로 사회의 자각과 개선이 이뤄지는 과정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은 죽음으로 만들어야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안 제주항공 참사를 비롯한 여러 참사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내야 하는 우리 사회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사고 관계자들이 먼저 사고의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하려고 노력하고, 그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하고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40년 전 참사의 교훈이 그에 가깝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