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절기(節氣)의 위기

입력 2025-08-25 00:40

절기로 따지면 입추(立秋)와 처서(處暑)를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폭염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8월 23일)가 하루가 지났는데도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이틀 이상 예상되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폭염주의보, 35도 이상 되면 폭염경보다.

해발 900m가 넘는 고원 지대인 강원도 태백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이 지역의 최근 30년간 8월 하순 최고 기온이 평균 24.6도라는 걸 감안하면 역대급 폭염이다. 태백은 고랭지 배추의 산지로 유명하지만 해마다 기록적인 폭염이 반복되면서 최근 20년 사이 배추 재배 면적이 40% 이하로 줄었다. 평창과 강릉 등 여름 배추를 생산하는 강원도 대부분 지역의 예상 작황은 최악이다. 생산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칠 것 같다며 농민들은 울상이다. 올해도 배춧값 폭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절기는 지구에서 관찰한 태양의 연간 이동 경로를 24등분 한 것으로 예로부터 농사 시기를 예측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였다. 고대 중국 주나라에서 유래된 24절기는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로 널리 확산됐다. 그런데 발상지가 황하강 유역이어서 우리나라 기후와 맞지 않는 절기가 적지 않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양력 2월 4일 무렵인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겨울이어서 농사 준비를 하기에는 이르다. 황하강 유역에서는 처서에 가을 작물을 준비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여름 작물인 벼 농사에 한창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더워지면서 절기의 정확도와 유용성은 떨어지고 있다. 최근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섭씨 1.5도 상승했다. 여름이 길어지고 열대야 현상이 증가했다. 망고나 바나나 같은 아열대 과일이 자라고 남부 지방에서 재배되던 사과는 수도권까지 북상했다. 절기도 우리나라 기후 특성에 맞게 고쳐 써야 하지 않을까.

전석운 논설위원